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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백 번의 특별사면은 정말 국민을 통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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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앞두고 정치‧경제인 사면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25일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사면 요청이 각계에서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국민 공감대 여부가 판단 기준"이라고 밝히면서죠. 불교계는 이명박 전 대통령, 김경수 전 경남지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경제 5단체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을 사면해달라고 청와대에 요청한 상태입니다. 문 대통령 퇴임일 전날인 석가탄신일(5월 8일)을 맞아 마지막 특별사면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죠.
불교계가 내세운 명분은 국민통합, 경제5단체가 내세운 명분은 경제위기 극복입니다. 사실 정권마다 반복된 대통령 특별사면의 명분들이죠. 한데 사면은 정말 국민 통합에 기여했을까요. 기업인 사면의 경제효과는 얼마나 될까요. 사면 논쟁 정리해봤습니다.
우리나라의 사면권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3·1절, 석가탄신일, 광복절, 성탄절, 대통령 취임 등에 정례 절차처럼 사면권이 실시됐죠. 석가탄신일 특사는 1981년, 1993년, 2004년, 2005년 총 네 차례 진행됐습니다. 다음 달 문재인 정부 마지막 특사가 실시되면 17년 만의 석가탄신일 특사가 되겠네요.
대통령 취임 직후와 임기 말 사면은 특히 정치적 부담을 털고 가겠다는 함의가 짙었습니다. ①1981년 4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신의 취임을 기념해 단행한 특별사면이 대표적이죠. 5,221명을 사면했는데, 그중 307명이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였습니다. 이때 내세운 사면의 명분이 "국민화합을 대전제로 국가 발전 등을 추진하자"는 거였어요. 누가 누구의 죄를 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암튼 전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임기가 사실상 막바지로 치달았을 때에도 김대중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대표를 비롯해 '시국사범'을 대규모로 사면하죠.
'사면=국민통합'이란 프레임의 최대 수혜자는 전 전 대통령 자신이었습니다. ②김영삼(YS) 대통령은 15대 대선 직후인 1993년 12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12·12쿠데타 관련 혐의로 복역하던 실세들을 전격 사면했죠. 역시 명분은 "대화합", "국민단결", "국가발전"이었습니다. 이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의지였는지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해요. 당시 대선후보 대부분이 전직 대통령 사면을 주장했고, 15대 대선 직후 대통령-당선자 회동을 거쳐 사면이 결정됐습니다.
다른 대통령들의 임기말 사면도 대개 비슷한 맥락으로 실시됐습니다. ③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 12월 밀입북 사건에 연루된 임수경씨와 문규현 신부, 5공 비리에 연루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 중앙본부장을 특별사면했고, ④김대중(DJ)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시작한 외환위기 원인 제공자 중 하나로 지목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을 사면했죠.
⑤노무현 대통령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현 국가정보원장),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임동원·신건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임기 말에 사면했습니다. ⑥이명박(MB) 대통령은 퇴임 직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등 본인 측근과 친박계인 서청원 전 의원 등을 사면했습니다.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사면 여지 자체가 없었죠.
정치인들의 사면이 국민통합에 이바지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죠.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사과와 반성 없이 생을 마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사실 당시 여론은 사면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대선후보였던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전두환‧노태우 사면론이 나온 1997년 9월 한겨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73.8%가 '조건 없는 사면'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고, 21.3%만이 '바람직하다'고 했습니다. 사면 자체에 찬반을 묻는 질문에도 반대(54.7%)가 찬성(41%)을 앞섰죠(신뢰수준 95%, 표본오차 ±4.4%). 사면 반대 이유로 △죄의 대가를 충분히 치르지 않았다(43.8%) △법 형평성에 어긋난다(25.8%)는 응답이 많았죠. 사면의 전제조건으로 37.4%가 '대국민 사과와 반성'을 꼽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경향신문이 현대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대선 전 사면 반대(63.3%)가 찬성(34.9%)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 찬성 의견이 더 많은 지역이 있었는데, 대구‧경북(63.1%)이었죠. 같은 해 4월 광주사회조사연구소‧대구리서치 포럼이 공동으로 서울‧광주‧대구시민 200명씩을 설문한 결과 서울, 광주시민의 67.5%, 82.5%가 전직 대통령 사면에 반대한 반면 대구시민 59.5%는 찬성했습니다.
결국 사면을 반긴 건 대선에서 대구‧경북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1997년 4월 두 전직 대통령 형 집행이 확정되자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대선후보 3인 모두 전직 대통령 사면복권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특히 김대중 후보는 주간지 '뉴스메이커' 인터뷰에서 "그분들이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도 똑같이 대응해선 안 된다. 반성이 없어도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는데, 이때 명분이 "동서화합"이었죠. 그해 9월 5‧18단체가 김대중 후보를 항의 방문했을 때 그는 "나는 용서할 테니 당신들은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해 또 한 번 논란이 됐습니다. 김대중 후보가 띄운 사면 이슈를 무력화하기 위해, 이후 이회창 후보는 '김영삼 대통령 임기 중 사면'을 요구하고 나왔습니다. 이에 전두환이 옥중에서 "고맙다"며 "우리 때문에 정치적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냐"고 화답할 만큼 매우 기뻐했다고 1997년 9월 27일 다수 언론이 보도했죠.
국민들도 정치권의 이런 계산을 알고 있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대선 전에 두 전직 대통령이 사면되면 그 배경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67.9%가 '정치적 득실계산 때문'이라고 답했어요. '국민화합'으로 이해한다는 응답자는 26.5%에 그쳤습니다.
정일영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논문 '국가폭력 이후의 사면: 가해자의 관용과 피해자의 용서'에서 이런 과정을 분석하며 "한국사회에서 사면은 법의 한계를 바로잡는 이상적인 목적으로 시행하기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고 꼬집습니다.
대통령 특사의 다른 명분인 '경제 살리기'는 어떨까요. 경제인 특사에 대해서는 지난해 자세히 소개한 바 있습니다(관련기사 '이재용 사면'은 국익일까 과거 주요 경제인 사면 어땠나).
사실 사면의 경제효과에 대한 딱 부러진 연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새 정부의 청와대 개방, 하다 못해 아이돌 가수 활동의 경제효과까지 분석하지만 신기하게 정권마다 반복되는 기업인 사면에 대해 경제효과를 분석한 연구는 없어요.
좀 오래됐지만, 경영인 범죄가 처벌되면 기업실적이 나아진다는 연구는 있습니다.
김두얼 명지대 교수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시절 작성한 '경영범죄와 기업성과 : 경영자의 배임과 횡령 범죄가 기업성과에 미치는 영향'(2008) 보고서에 따르면 비리 경영자를 처벌하면 기업 실적이 개선된다고 합니다. 2004년 1심 재판이 종료된 128개 기업 경영인 범죄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2001년 수사‧재판이 이뤄지기 전 △2003년 재판 진행 △2007년 재판이 종료 후로 나눠 기업 성과를 비교했는데, 2001년 이들 기업 평균 수익률(-10~10%)은 전체 기업의 평균과 비슷했는데, 수사 시기인 2003년 크게 나빠졌다가(수익률 –10% 미만 기업이 50%), 2007년 경영자를 처벌하고 나서 개선돼 일반적인 기업 수준으로 회복됐다는 겁니다. 보고서는 "경영범죄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이 악화된 건 경영 범죄 그 자체 때문"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기업인 특사 명분인 '경제 살리기'가 허구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죠. 경제개혁연구소의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 교수,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도 '재벌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는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가' 보고서(2020년)에서도 기업 총수가 처벌을 받을 상황, 사법 처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주가는 영향받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해당 보고서는 2000~20018년까지 35개 기업집단, 319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법원판결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겁니다.
2015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업인 특사 얘기를 꺼냈을 때,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름대로 중요한 죄를 지었다고 해가지고 감옥에 집어넣은 건데 그걸 그냥 경기부양하기 위해서 풀어주겠다, 이건 정당성도 없고 효과도 없을 거라고 봐요." 정치인 사면에 '사과와 반성'이 전제돼야 하는 것처럼, 기업인 사면에도 조건이 전제돼야 하지만,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말도 덧붙였죠. "옛날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 초기에 했듯이 무슨 서약서라도 받아내고 풀어준다면 모르지만 그냥 감옥에 갇힌 재벌 총수 몇 명 풀어준다고 해가지고 투자가 살아나고 우리나라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겠습니까?"(2015년 1월 5일 '한수진의 SBS전망대' 인터뷰)
다만 특사로 풀려난 기업인이 공격적 투자로 국민 경제에 힘을 보탰기 때문에 대대적 투자가 필요한 지금, 특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①2015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 달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 국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 46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뒤 경기 이천과 충북 청주 등에 생산시설 3곳을 구축한 게 대표적인 사례죠. 3개 공장의 생산유발 효과는 총 183조6,000억 원, 고용창출 효과는 67만2,000명이라고 추산됩니다. ②2015년 12월에 조세포탈, 횡령 등 혐의로 수감됐던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이듬해 특사로 풀려난 뒤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죠. 2017년 투자액을 5조 원 이상으로 책정했는데 2011년 이후 투자액이 매년 2조 원 안팎에 머물렀다는 점에 비춰보면 파격적인 규모입니다. ③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이 2008년 8월 특별사면된 뒤 그해에만 예년의 2~4배에 달하는 11조 원을 투자하고 4,500명을 채용한 적도 있죠.
사면의 경제 효과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전문가들은 '특별사면은 지금보다 제어 장치가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일반사면은 국회 동의가 필요한 반면 특별사면은 사실상 대통령의 결정에 달렸다는 거죠. 사면심사위원회→국무회의 의결의 과정을 거치지만, 법무부 장관이 사면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당연직 위원 5명도 법무부‧대검찰청 간부가 맡습니다. 사면심사위원 인사권을 대통령이 갖고 있는데, 애당초 견제가 되겠냐는 거죠.
지난해 12월 발표된 이상명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의 논문 '사면권 행사의 헌법적 한계와 개선방안'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일반사면은 단 9번(일반감형, 일반복권 포함) 실시된 반면, 특별사면은 99회(특별감형, 특별복권 포함) 실시됐습니다. 올해 초 신년 특사를 포함하면 100회가 되겠네요.
이 교수는 특별사면 주요 사례를 꼽으며 "사면권의 자의적 행사는 대통령제에 권력의 인격화(국가권력이 개인의 사적 이익이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좌우)를 초래하고, 정치부패를 조장하는 폐단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특히 "공안사범의 경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 상당수가 사면된 반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단 한 건도 없었던 점은 사면의 기준과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런 사면권 행사는 국민화합이 아니라 갈등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죠.
이 교수는 대안으로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의 구분을 없애고 모든 사면에 국회 동의를 받도록 바꾸라고 제시합니다. 또 △중대 경제범죄 △헌정 질서파괴 △집단살해 △민간인 학살 △인신매매 △항공기나 선박 납치 등 사면대상 범죄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고 지적하죠. 마지막으로 사면의 사유와 시기를 한정하고 "사면심사위원회의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위원 구성에 있어 대통령 3인, 국회 3인, 대법원장 3인을 추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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