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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사회의 아마추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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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스포츠에 중독된 사회라고 할 만큼 일상에서 스포츠의 비중이 크다. 미국 스포츠 하면 프로 농구나 야구의 화려한 스타들을 흔히 떠올리지만, 사실 미국인들, 특히 부모들 일상에서 더 익숙한 것은 아이들이 학교와 클럽을 통해 참여하는 아마추어 스포츠일 것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13~17세 미국 아이들의 35~45%가 적어도 한 가지 스포츠에 정기적으로 참여한다는데, 실제 주변에 아이 있는 많은 부모들은 주말 대부분을 아이들 운동경기를 따라다니며 보낸다.
운동에 별 소질이 없는 우리 아이도 어릴 때부터 축구, 수영, 테니스 등 이런저런 운동을 조금씩 해왔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난데없이 배구부에 가입하겠단다. 아이 입에서 배구라는 말이 나오는 걸 들어본 일이 없는 터라 의아했는데, 절친이 누나를 따라 배구를 시작하면서 주변 친구들을 설득해 다 같이 배구부에 가입하기로 한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면 공부도 더 해야 할 것 같고, 운동에 재능이 없는 아이가 이제 배구를 시작해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데, 매일 방과 후 두 시간씩 연습을 하고 주말에 시합도 해야 한다니 썩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는 이미 마음을 굳힌 후였다. 덕분에 위스콘신의 긴 겨울을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몇 시간씩 운전해 곳곳에서 열리는 배구대회를 돌아다니며 보냈다. 규칙도 잘 모르는 초보들로 이뤄진 팀이지만 500개 넘는 팀이 나오는 전국대회까지 참여했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 훈련을 받은 팀들이 많이 참여하는 이 대회들에서 아이의 왕초보 팀의 성적은 한국 프로야구 원년의 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성적보다 초라했다. 경험이 쌓이고 훈련을 하다 보면 멋진 해피엔딩이 있지 않을까 꿈도 꿔봤지만, 마지막 대회 꼴찌 팀끼리 붙은 마지막 경기마저 지고 시즌을 마감했다.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하고 지는 걸 유난히 싫어해 남보다 잘할 수 없을 것 같은 운동이나 취미 활동은 일찌감치 그만두거나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아 이 나이에도 별 취미가 없는 나에게, 매주 주말 연전 연패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번번이 패배를 안기는 상대팀이 얄밉기도 하고 늘 이기는 상대팀 부모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내 심정을 아는지 아이는 기죽는 기색이 없다. 졌다고 나보다 더 분해하는 것 같지도 않고 대회마다 자기 팀을 박살내는 상대방 선수들과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다음 대회에 더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각오로 따로 뼈를 깎는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아내는 아이가 욕심도, 노력할 의지도 없다며 한심해 한다.
하지만 주말마다 아이의 지는 경기를 보고 응원하면서 내 이런 생각도 조금씩 바뀌어 갔다. 프로가 되거나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면 어떻고 대학 지원서에 한 줄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어떤가? 운동에 소질이 없어도 친구가 가장 소중한 시기 또래들과 팀을 이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 거기에 패배의 순간에 상대를 축하할 줄 아는 관용을 배우고 아주 가끔 찾아오는 작은 승리의 기쁨을 나누며 깊어지는 우정까지 더하면 뭘 더 바랄까? 승리를 유일한 가치로 여기는 왜곡된 프로 스포츠 정신이 우리 삶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승자독식의 경쟁사회, 진정한 아마추어인 아이와 꼴찌 팀 동료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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