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여행자·수집가·미식가... '철도 마니아' 세계는 넓다

입력
2022.04.30 04:40
12면

<62> 오타쿠 문화의 원형, 일본의 ‘철도 마니아’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과 일본 철도의 역사적 배경은 크게 차이가 나지만, 두 나라 모두 철도 마니아가 활동 중이다. 양국의 어긋난 역사를 되돌릴 방법은 없지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영역을 늘린다는 측면에서 해당 부문의 교류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일러스트 김일영

한국과 일본 철도의 역사적 배경은 크게 차이가 나지만, 두 나라 모두 철도 마니아가 활동 중이다. 양국의 어긋난 역사를 되돌릴 방법은 없지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영역을 늘린다는 측면에서 해당 부문의 교류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일러스트 김일영


철도 마니아는 오타쿠 문화의 ‘원형’

마니아 천국이라고 할 만큼 다채로운 마니아 문화가 꽃피는 일본에서도 ‘철도 마니아’는 각별하다. 특정 대상을 콕 찍어 남다른 관심을 쏟는 마니아 문화에 우열이 있겠느냐마는, 철도 마니아는 역사적 경위에서부터 폭넓은 저변까지 특별한 존재감이 있다. 일본에서 정말 다양한 철도 마니아를 만났다. 초등학교에 겨우 입학한 어린 소년이 철도에 대한 애틋한 관심을 드러내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철도 마니아는 오래전에 ‘졸업’했다면서도 철도에 대한 박식함을 여과 없이 뽐내기도 했다.

철도를 사랑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수많은 차량 모델과 노선에 대한 정보를 꿰뚫고 있는 박학다식형도 있지만, 오로지 철도를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전철에 몸을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여행자형, 차량 모형이나 시간표, 종이 티켓 등을 수집하는 꼼꼼한 수집가형, 각각의 전철역에서만 판매하는 개성 만점의 도시락 ‘에키벤 (駅弁, 전철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섭렵하는 미식가형 등 철도 마니아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다. 아무래도 남성 팬이 많은데, 마니아 문화가 애초에 소년들의 취미 생활에서 싹텄다는 역사적 경위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일본의 마니아 문화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오타쿠’라고도 부르는 만화, 애니메이션, 온라인 게임 등에 대한 마니아를 떠올릴 것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나라에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에 대한 팬덤이 존재한다. 만화를 뜻하는 일본말 ‘망가나, 애니메이션의 일본식 표현 ‘아니메’ 등이 영어권에서도 일반 명사로 통용될 정도다. 그러다 보니, 그런 특정 장르에 대한 오타쿠 취미가 일본 마니아 문화의 주류라고 짐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본에 생활하며 느낀 것은, 외부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몰두하는 전형적인 오타쿠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또, 그들은 일본에서도 약간은 ‘별종’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의외로 주변적인 존재였다.

그보다는 특정 대상에 대해 열정을 쏟는 취미의 문화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취미를 갖고 열정을 쏟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기인’이라고 할 정도로 취미에 바치는 노력이 심상치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필자의 한 지인은 오래전부터 전화기나 휴대폰 등 통신기기에 대해 특별한 열정을 쏟으며 수집해 왔다. 그러다 보니 통신 전문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통신 기기 관련 정보를 그에게 문의할 정도로, 방대한 휴대폰 컬렉션과 전문가를 뛰어넘는 수준의 정보력을 갖추게 되었다. 미국의 유명한 휴대폰 회사에 자신이 소장한 통신 단말기를 연구 목적으로 대여한 적도 있다. 지금은 아예 그 분야의 전문 연구자로 변신해서 대학과 기업 연구소 등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그의 경우는 일본에서도 ‘튀는’ 경우이지만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특정 대상이나 분야에 통달해 전문가 수준에 도달한 애호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관심을 가진 대상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일본인은 수줍다는 일반적인 통념에 근거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본에는 이렇게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취미 문화가 존재하는데, 활기찬 애호가의 풍토가 싹튼 배경에 철도 마니아의 독특한 맥락이 존재한다. 근대 일본 사회에 최초로 등장한 애호가들이 바로 철도 마니아였기 때문이다. 철도 마니아야말로 일본 오타쿠 문화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철도 마니아가 탄생, 성장한 역사적 경위

그렇다면 일본에서 철도 마니아는 어떻게 생겼을까? 일본에서 철도가 처음으로 개통된 것은 1872년, 도쿄의 신바시(新橋)역과 요코하마(横浜)역을 오가는 구간이었다. 당시 철도는 서양에서 들어온 최신식 문물의 상징으로, 특히 젊은 남성들의 동경 어린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였다. 192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소년 잡지에는 철도, 비행기, 군함 등의 주제가 자주 특집으로 등장했다. 1930년대에는 철도를 전문으로 다루는 소년 잡지도 여럿 등장했고, 대학에 ‘철도 연구회’라는 이름의 동호회 모임이 생겨나기도 했다.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가 <은하철도의 밤 (銀河鉄道の夜)>이라는 유명한 작품을 쓴 것도 이 즈음이었다. 기차를 타고 우주 공간으로 떠나는 신비로운 여행을 묘사한 이 동화는, 나중에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된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근대 이후 일본에 철도 기술이 도입된 역사와 거의 동일한 궤적 속에서 철도 마니아가 탄생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당시 일본 정부는 근대화에 있어서 서구에 뒤졌다는 위기 의식이 강했고, 하루라도 빨리 최신식 문물을 도입해 부국강병의 꿈을 이루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았다. 말이 좋아 부국강병이지 부지런히 군사력을 키워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 정책을 답습하겠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제국주의적 발상이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군국주의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소년들은 군사력의 토대인 과학 기술에 대한 꿈과 동경을 키웠다. 철도도 그런 대상 중의 하나였다. 실제로 이 시기의 철도 마니아는 군함이나 전투기 등 군사 기술에 대해서도 열렬한 관심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일제 식민주의의 희생양이었던 한반도에서는 철도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 한반도에서 최초로 개통된 철도는 1899년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이다. 사실상 무주공산이었던 한반도를 놓고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열강들이 기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철도 부설권이 차례로 일본 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다. 사실상 일제가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드는 물리적 인프라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경위가 있다 보니 한반도에서 철도는 수탈과 착취의 상징이었다. 한국과 일본 사회가 철도라는 동일한 대상을 수용, 해석하는 방식은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패전과 함께 일본의 군대가 해체되면서(사실상 일본의 군대로 기능하는 ‘자위대(自衛隊)’는 1950년 6·25전쟁을 계기로 부활했다), 군사 기술을 옹호하는 담론은 자취를 감추었다. 패전 직후에는 전쟁 기술에 대한 공공연한 언급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나 군수 물자의 수송 수단인 철도 역시 전시에는 전쟁 기술의 일종이었다. 다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장거리 이동 수단이자 경제 부흥을 위한 산업 인프라로서 사회적 역할이 건재했다. 군함이나 전투기 등에 대한 취향은 뒤안길로 사라진 반면, 철도만은 패전과 무관하게 계속할 수 있는 취미로 명맥을 유지했다. 일본의 철도 마니아들에게 초고속 장거리 전철 ‘신칸센(新幹線)’의 개통(1964년)은 시대를 가름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일본 사회에서 철도는 전쟁 이전의 ‘황금기’와 연결된 흔치 않은 취미의 대상이자, 전쟁 폐허에서 경제 부흥을 부활한 기적의 상징이다.

'철도' 역사적 맥락 다른 한·일, 마니아 열정은 공감

일본의 철도 마니아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탄생했다. 온전하게 개인적 영역인 취미 문화의 역사적 이면에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낀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한 세기 넘게 이어져 온 철도 마니아의 열정까지 제국주의의 부산물인 양 평가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남다른 열정과 노력이 나름의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철도 마니아가 활동 중이라고 들었다. 전혀 다른 역사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비슷한 종류의 애호가 문화가 싹텄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긋한 역사를 되돌릴 방법은 없겠지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영역을 조금씩 늘려 나가는 것이야말로 한일 간의 감정적 거리감을 줄이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