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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탕' 데이팅 앱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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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에, 넷플릭스에서 아주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난다. '애슐리 매디슨'이라는 데이팅 사이트를 취재한 내용이었다.
애슐리 매디슨은 '인생은 짧습니다. 바람 피우세요'라는 듣기만 해도 영혼을 죄악의 불꽃으로 불사르는 듯한 슬로건을 내세운 기혼자 전용 데이팅 사이트다. 그 콘셉트만 해도 매우 강력한 막장성이 보장되는 듯한데, 다큐멘터리는 어떤 특이점 이후를 다루고 있었다. 2015년 이 사이트의 보안이 뚫리는 짜릿한 사건이 발생하여 수천만 명의 회원 개인정보가 유출된 후를 취재한 것이었다. 그에 따라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때아닌 대호황을 맞게 됐다. 맥주 마시면서 보면 충분한 행복을 보장하는 좋은 다큐멘터리였는데, 아쉽게도 이제는 넷플릭스에서 내려가고 없더라.
이 사건에서 우리는 여러 교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돈방석에 앉은 이혼 전문 변호사들을 보면서 우리 경제 시스템은 몹시 복잡하게 연결됐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을 테다. 보안에 투자하는 것은 언제나 옳은 일이라는 것도. 아무리 우리 개인정보가 이미 유출될 만큼 유출돼서 주민등록번호 하나에 10원의 가치도 없다고 해도 말이다. 파트너에게 신의를 지키는 편이 좋다는 생각도 어쩌면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진부한 내용보다 더 상큼한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다. 애슐리 매디슨을 공격한 해커들이 유출된 개인정보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애슐리 매디슨의 성비는 여성이 5%, 남성이 95% 정도였다. 사실 여성 계정들은 그마저도 대부분 봇이라서, 실제로는 남성 활동 유저 1만 명당 여성 활동 유저가 3명 정도 있었다고 한다. 사이트 이름을 '테스토스테론 매디슨'으로 정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봇과 대화하며 자신이 두근거리는 일탈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좀 애잔하지만 솔직히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은 인간들이여!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아만다'라는 데이팅 앱을 아는가?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이 앱은(아무래도 애슐리 매디슨보다는 덜 화끈한 것 같다) 회원 가입시 이성에게 외모 점수 평가를 받는 시스템으로 화제가 되곤 했다. 그런데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직원들이 가짜 계정을 만들어 여성인 척 활동하도록 회사에서 지시를 내렸다는 내부고발이 나왔다는 것이다. 가짜 계정은 대만 데이팅 앱에 있는 여성 사진들을 도용했다고 한다. 참으로 구질구질하다. 이왕 가짜 계정을 만들려면 아예 인공지능으로 생성되는 가짜 사람의 사진을 쓸 것이지. 그러면 이른바 '테크 스타트업' 같은 느낌도 나고 좋지 않나.
하여튼 이 가짜 계정과 매칭되기 위해 돈을 지불한 사람들도 있었다. 같은 회사가 운영하는 다른 서비스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데이팅앱이 남탕(남자들뿐이라는 뜻)'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전략을 사용하는 것. 이게 바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기업가 정신' 아닐까?
그리고 혹시 낚였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오. 찰나의 순간이라도 진실한 설렘을 누렸다면 그것은 헛된 일이 아니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상인가 부질없는 고민이니, 현재에 집중하고 생생한 감각을 소중히 여기시오. 시간은 손아귀로 흘러 나가는 모래와 같은 것, 빠져나가면 다시 쥘 수가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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