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무기는 기술의 산물이다. 기술혁신은 무기혁신을 낳는다. 기술이 곧 전쟁양상을 결정한다는 미래주의 관점에서 전쟁과 무기, 그리고 한국국방의 생태계를 그려본다.
1945년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래 지난 77년 동안 핵사용은 하나의 금기사항이 되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이러한 핵 선제불사용(no-first use) 원칙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과연 푸틴 대통령에 의해 핵불사용이라는 금기가 깨어질 수 있을까?
푸틴 대통령이 핵운용부대에 경계태세 돌입을 지시하면서 핵사용 가능성을 키웠다. 최근에는 러시아 외무장관이 "현재 핵전쟁 위협은 실재하며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재래식 전쟁을 치르는 한편 핵 위협을 통해 나토의 직접적인 전쟁 개입을 저지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더욱이 향후 재래전쟁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실제 핵을 사용할 수도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틈타 북한도 핵사용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25일 개최된 열병식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근본이익 침해 여부에 대한 자의적 판단에 따라 억제 이외의 목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매우 위험한 주장을 하고 있다.
핵은 크게 탄두의 폭발력, 사정거리, 투발수단, 표적 등을 기준으로 전략핵과 전술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략핵은 사정거리가 길고 폭발력이 강하고 주로 인구가 밀집한 주요 도시를 표적으로 한다. 전략 핵무기는 상호 확증파괴에 의한 막대한 보복의 위협으로 핵의 사용을 억제한다. 따라서 핵사용은 사실상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전술핵은 전투에서 재래식 무기와 함께 사용되도록 고안된 무기이다. 소형이며 사정거리는 지상발사가 500㎞ 이하이고 해상 및 공중발사는 600㎞ 이하이다. 폭발력은 가변적이며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의 위력 이하로 조정할 수도 있고 단거리 미사일, 비행기, 선박, 야포 등도 투발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표적은 주로 병력과 군시설 등이다. 그나마 전략핵보다는 전술핵이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되는 이유이다. 따라서 전술핵과 투발수단을 보유한 국가가 핵을 사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데이비스와 베넷은 핵 선제사용의 유형을 △평시의 실수 △의도하지 않은 분쟁의 확전 △의도적 선제사용 등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전술핵의 파괴력도 사실상 크기 때문에 오판과 실수에 의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히로시마 폭탄의 절반 정도 폭발력을 가진 전술핵이 맨해튼 중심에서 폭발하는 경우 약 5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과연 핵 선제불사용이라는 금기사항은 깨지는 것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후 전개를 주목해야 한다. 러시아가 핵사용의 전례를 남기면 전술핵을 보유한 국가의 핵선제 사용 가능성이 그만큼 증가할 것이다. 특히 러시아의 핵사용이 상당한 성과를 달성하는 경우, 유사시 핵국가들은 핵사용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핵사용 가능성에 대한 과대평가나 과소평가는 효과적 대응을 방해한다.
한편 북한은 전술핵 능력을 개발하고 있으며 억제에서 선제사용으로의 핵교리(핵과 관련된 기본적인 원칙이나 공식적으로 승인된 행동체계) 변화를 공개적으로 암시한다. 사실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가 핵국가의 핵위협에 대처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에 비하면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외교와 미사일 방어, 확장억제 등의 현명한 조합이 핵사용 위협을 제거하거나 손실을 감소시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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