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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제도는 21세기 노예제도!" 병무청 앞에서 마스코트 불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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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노예 제도인 사회복무제도를 즉각 폐지하라!"
20일 오후 4시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 앞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이 주최한 '굳건이 화형식' 집회에서 한 발언자가 이렇게 선창했다. 그러자 집회 참가자들은 병무청 건물을 바라보고 "폐지하라!"를 연신 외쳤다. 이들은 병무청 마스코트 캐릭터인 '굳건이'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굳건이가 타오르자 병무청 앞은 함성 소리로 가득찼다.
현장에는 재가 돼버린 굳건이 대신,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 금지 협약을 이행하라' '위험한 무자격자 복지업무, 시설이용자에게도 손해다' '정당한 임금으로 자격 있는 노동자 채용하라' '노동조합 인정하고 근로기준법 적용하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눈길을 끌었다.
'굳건이 화형식'은 사회복무요원들이 모여 현안을 주제로 집회를 열고 목소리를 높인 첫 번째 사례다.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가 사회복무요원의 정치행위를 금지한 병역법 제33조 제2항 제2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회복무요원 노조 전순표(25) 위원장은 집회 시작 전 "집회에 참여하는 것에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며 "신상이 노출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집회 시간을 평일 오후 4시로 결정한 이유를 두고 전 위원장은 "병무청 업무 시간에 맞춰서 집회를 해야 더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사회복무요원들이 일하는 시간이지만 참가자들이 개인 휴가를 사용했다"며 "귀한 시간 내서 와주시는 만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회복무요원은 병역판정검사에서 1~3급 현역 판정이 아닌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이들로, 1년 9개월 동안 국가기관·공공단체·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일한다. 사회복무요원은 기초군사훈련 기간(3주)에는 '군인'이지만, 그 뒤에는 '민간인'이다. 사회복무요원 노조 측에 따르면 이들이 기초군사훈련 기간 외에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군법 대신 일반 형법이나 민법 등의 적용을 받는다.
사회복무제도는 1995년부터 이어져 온 대체복무제도로, ①초기에 이들은 공익근무요원이라고 불렸지만 ②2013년 병역법 개정에 따라 사회복무요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사회복무제도가 생겨나기 전인 ③1969~1994년에는 대체복무제도로 방위소집제도(방위병)가 있었지만, 사회복무요원제도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한때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며 현역 군인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던 사회복무요원들이 한곳에 모여 '제도 폐지'를 외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복무요원들이 '사회복무제도 즉각 폐지'를 외치게 된 배경에는 20일부터 국내에 발효된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강제노동 금지협약'이 있다. 지난해 4월 ILO가 협약을 비준한 지 1년 만이다. 사회복무요원 노조 측은 "사회복무제도는 ILO 제29호 협약이 규정하는 강제노동에 해당하니 즉각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ILO 제29호 협약은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모든 노동이나 서비스'를 강제노동으로 규정하고, '잉여 징집병의 비군사분야 노동'을 금지한다. 다만 '군사적 성격에 따라 강제되는 노동 또는 서비스'는 강제노동 예외로 인정된다. 따라서 징병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현역 군인의 경우 강제노동 대상에 해당하지 않지만, 사회복무요원은 보충역의 비군사분야 노동이라는 점에서 강제노동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위원장은 "사회복무요원들은 공공기관, 지하철 역, 요양원, 아동센터, 학교 등에서 근무한다"며 "행정 업무, 꽃밭 가꾸기, 짐 나르기, 청소 등 비군사적 목적의 일을 하고 있으니 29호 위반"이라고 말했다. 보충역이 비군사분야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7년과 2012년 ILO는 한국의 사회복무제도가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병역법은 ILO 핵심협약(제29호)과 상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협약 비준을 위해 개정한 병역법에 따르면, 4급 보충역 판정자들에게 '현역 복무 또는 사회복무'라는 '선택권'을 주면서, 사회복무제도가 강제노동으로 해석될 여지를 없앤 것이다. ILO는 개인에게 '선택권'을 주면 강제성이 사라진다고 본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4일 '언론보도설명'을 통해 "지난해 4월 병역법을 개정함으로써 사회복무요원 대상으로 분류된 인원에게도 (현역 복무라는) 선택권을 부여하여 개인의 선택권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전 위원장은 "몸이 아파 4급 판정을 받은 사람들한테 '현역복무 또는 사회복무' 중에 고르라는 것은 말만 선택이지 사실상 강요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비준 시기에 맞춰 병역법 개정을 한 것 자체가 꼼수"라며 "협약 비준을 위해 법을 교묘히 악용한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ILO 핵심 협약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제노동기구가 정한 기준으로 총 여덟 개 조항이 있다. 국제노동기구는 유엔(UN) 산하 국제기구로 총 187개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1991년 가입했다. 20일부터 우리나라에 발효된 ILO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단결권에 관한 제98호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로,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핵심협약 8개 중 7개를 비준한 상태다.
전 위원장 정부가 보충역 판정자들에게 '현역복무'라는 선택권을 쥐여주도록 병역법을 개정하는 것을 보고, 2월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ILO에 제소하기 위해서다. 그는 "ILO에 한국 정부의 행태에 대해 진정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개인 자격으로는 불가능했다"며 "노조를 통해서만 절차를 밟을 수 있어서 (노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노조 활동가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모였다. 사회복무요원들이 근무 지역이 모두 다른 탓이다. 전 위원장은 "현재 공식으로 서류를 제출하고 조합비를 내시는 분들은 10명 정도"라며 "사회 통념상 노출을 꺼리시는 분들도 계셔서 익명카톡방도 함께 운영 중인데 이곳엔 현재 약 150명 정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복무요원 노조는 지난달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에 노조 설립 신고를 했지만 반려당했다. "사회복무요원들은 병역법 적용을 받고 민간인과 다른 특별한 공적 지위를 가지기 때문에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전 위원장은 "사회복무요원은 기초군사훈련 기간을 제외하면 사실상 노동을 제공하는 민간인 신분인데 노동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며 "다음 달 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도움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맞설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와 ILO 전문가위원회에도 법외노조 이름으로 진정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노동조합권 침해를 살피고, ILO 전문가위원회는 회원국의 협약 적용 실태 보고서를 심사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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