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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눈높이에서도 떳떳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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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불법은 없었다. 국민의 눈높이를 말씀하시는데 국민의 눈높이가 도덕과 윤리의 잣대라면 저는 거기로부터도 떳떳하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1일 인사청문회준비단 사무실 출근길에서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면서 한 말이다. 정 후보자의 코멘트를 바탕으로 작성돼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며 잠깐 혼란스러웠다. 설마, 저렇게 자신 있게 떳떳하다고 하지는 않았겠지. 내 생각이 틀렸다. 정 후보자는 법적으로는 물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도덕적, 윤리적 잣대로도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며 쐐기까지 박았다.
이런 해명이 나오게 된 맥락이 있긴 하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정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부정의 팩트가 있어야 한다"며 불법성 여부를 기준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여론이 싸늘해지고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자 "법적인 책임을 넘어서 도덕성까지, 한 차원 높은 차원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사안이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자 정 후보자가 재차 자신의 의혹 역시 '국민의 눈높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항변한 것이다.
정 후보자 자녀들은 아빠가 실세인 병원에서 봉사 활동을 했고 그 경력이 아빠가 실세인 병원의 의대 편입에 활용됐다. 또한 아빠의 동료 교수들이 직접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이건 이미 확인된 '팩트'다.
이런데도 도덕과 윤리의 잣대에서 떳떳하고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할 수 있나.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다. 후보자와 국민의 눈높이가 다르다는 거다.
최근에는 정 후보자 딸이 경북대에서 의대 편입에 필요한 과목을 계절학기로 수강한 후 편입 전형을 치렀고 의대로 편입한 뒤에는 병원장이자 교수로 있던 아버지 수업을 수강했다는 추가 의혹이 불거졌다. 경북대 지침에 따르면 교원은 자녀가 본인 강의를 수강할 경우 학교에 신고해야 하지만 정 후보자는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정 후보자는 "부모가 속한 학교나 회사, 단체 등에 자녀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사회적 규범이 없는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자녀들의 의대 편입 시점이 수십 년 전도 아닌 4~5년 전이라는 걸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공직자가 가져야 할 이해충돌 회피에 대한 인식이 빈곤하다는 걸 스스로 고백한 발언이나 다름없다.
최근 코로나19 이후 벌어진 학습격차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서울의 대표적 교육소외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중학교 교사와 인터뷰를 했다.
18년 차 교사인 그는 "교실 안에서 학생들 간 사회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게 느껴진다"고 우려했다. 이어 "잘사는 학생과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갈라지는 현실의 벽도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 후보자가 보건복지부 수장이 될 만한 역량을 갖췄는지는 앞으로 청문회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각종 의혹 가운데 불법,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는 장관 임명을 떠나 필요하다면 감사·수사로 밝혀야 한다. 더불어 정 후보자가 어떤 눈높이를 갖고 있는지도 중요한 검증 영역으로 삼아야 한다. 눈높이가 다르면 보이는 세상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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