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멈춘 '바이오 코리아'..."지금이 새판 짤 절호의 기회"

입력
2022.05.02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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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드러난 바이오 산업 '민낯'
다양성·자금력·상품화 경험 부족
"전체 생태계 이끌 거버넌스 필요 시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5일 오전 경기 성남시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연구실의 광학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5일 오전 경기 성남시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연구실의 광학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예고 없이 들이닥친 코로나19는 우리나라 바이오 산업의 민낯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빠른 속도로 외형을 키웠지만 실상은 인프라가 엉성한 사상누각에 가까웠다는 반성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바이오 산업의 '큰 그림'을 그려 새판을 짤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다.

지난해 임상시험 수행 세계 '6위'지만 연구실에서 멈춘 '생태계'

최근 2, 3년 사이 우리나라의 바이오 인프라는 외형적으로 성장했다. 취약점으로 꼽혔던 규제당국의 승인 및 심사 속도가 빨라졌으며, 임상시험 환경도 개선됐다.

1일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상시험 승인은 2020년 799건에서 지난해 842건으로 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이에 기반한 글로벌 임상시험 순위는 전년과 같은 6위를 유지했다. 재단 관계자는 "다국가 임상과 난도 높은 초기 단계 임상이 증가한 것은 국내 임상시험 수행 역량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럼에도 한계는 뚜렷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요구하는 '다양성'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다국가 임상을 할 수밖에 없고, 식품의약품안전처 심사 인력 부족 등 고질적인 문제로 일정이 지연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바이오 벤처·스타트업이 임상시험에 드는 비용을 주로 기업공개(IPO)를 통해 충당하는 만큼 결과와 매출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업계 관계자는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주가가 요동치고, 잘못하면 '사기꾼'으로 낙인찍힌다"며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벤처 제약사의 경우는 신약 후보물질 임상시험을 직접 마무리하지 못하고 다국적 제약사에 소유권을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논문과 특허는 선진국 수준이지만 임상시험을 거쳐 글로벌 신약을 상품화해 출시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전히 바이오 생태계가 '연구실 안에 멈춰 있다'고 보는 이유다.

"부족한 건 경험"...정부 컨트롤타워가 생태계 재정비해야

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약국에서 미국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판매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약국에서 미국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판매하고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해외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장점을 습득하고, 다국가 임상 경험이 많은 인사를 영입해 우리에게 없는 경험을 '이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경험은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며 "해외 파트너와 함께 글로벌 수준에서 임상시험을 디자인하고 그에 맞는 병원과 환자를 모집해 임상 3상까지 통과하는 경험을 몇 번 하면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선진국 수준을 금방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제대로 된 권한을 가진 컨트롤타워가 바이오 산업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부회장은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식약처, 환경부 등 다양한 부처에 바이오 관련 사안이 흩어져 있다"며 "지금까지는 제조업에 근간을 둔 육성책이었다면 이제는 전체 생태계를 끌고 가는 거버넌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이 가진 혁신기술이 최종 단계까지 흘러갈 수 있도록 IPO 관련 규제와 인허가 과정, 플랫폼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 사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는 코로나19 이후 메신저 리보핵산(mRNA) 같은 원천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난해 연구개발(R&D)부터 임상시험, 상업화, 투자 유치까지 이어지는 전체 생태계를 유기적으로 관리하는 정부 기관을 만들었다. 바니 그레이엄 미국 국립보건원 백신연구센터 부소장을 영입하는 등 자문 그룹도 든든하다.

빅토리아주 과학자문위원회 수석과학자 어맨더 케이플스 박사는 "연구소와 대학, 건강보험 시스템 등 기본 재료를 갖추고 있더라도 이를 하나로 묶고 연결할 수 있는 '권한 있는 중앙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코로나 상황을 지나오며 뼈저리게 느꼈다"며 "바이오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고부가가치 산업인 만큼 정부가 리더십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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