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푸틴

입력
2022.04.27 04:30
수정
2022.04.28 22:2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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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북한 국제정치 ‘안보 딜레마’ 현상
실제 침공 이유는 권위주의체제 붕괴 우려
1962년 미소 ‘쿠바 치킨게임’ 재현 공포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반도의 심페로폴 거리에서 지난달 10일(현지시간) 한 행인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러시아는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다. 전쟁을 끝낸다"는 구호가 적힌 포스터 앞을 지나고 있다. 심페로폴=EPA 연합뉴스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반도의 심페로폴 거리에서 지난달 10일(현지시간) 한 행인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러시아는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다. 전쟁을 끝낸다"는 구호가 적힌 포스터 앞을 지나고 있다. 심페로폴=EPA 연합뉴스

푸틴의 침공은 안보적 이익을 이유로 시작됐다.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겠다고 하자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나토의 확대와 동진(東進)이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지금 타국에서 학살과 처형, 약탈과 강간, 잔혹행위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국제정치의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 현상이 침략의 왜곡된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유럽에서 국가안보가 불안했던 편이다. 독일이든 프랑스든 강대국이 출현할 때마다 그들은 동쪽으로 공격을 했다. 국제관계는 국내정치와 달리 개별 국가의 행동을 강제할 강력한 권위체가 없다. 어느 나라도 안심하지 못한 채 서로를 불신하게 된다. 특히 강대국에 둘러싸인 약소국은 상대가 공격할 의사가 없더라도 안보 불안에 빠져든다. 북한을 안보 딜레마 사례로 설명할 수 있다. 핵개발이 북한의 입장에선 방어용이 되고, 반대로 미국이나 한국으로선 공격용으로 규정해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푸틴이 내세운 안보 불안은 핑계일 뿐이다. 잠재적 안보 위협이 있다고 타국을 무력으로 침공하는 것은 주권존중 원칙이 기본인 국제법을 완전히 위배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소련의 위성국은 물론 연방 구성국까지 서구 민주주의 체제로 갈아타는 현실에 대한 불안을 전쟁 도발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봐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들에 러시아가 포위될 것을 푸틴은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국내 권위주의체제 유지가 어렵다고 절감했기 때문이다. 내부의 체제 모순과 폭력성, 그리고 주변국의 변화가 본질적인 배경이란 얘기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에서 나무로 만든 장난감 총을 든 소년(7)이 파괴된 러시아군 차량 옆에서 총놀이를 하고 있다. 체르니히우=AP 뉴시스

지난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에서 나무로 만든 장난감 총을 든 소년(7)이 파괴된 러시아군 차량 옆에서 총놀이를 하고 있다. 체르니히우=AP 뉴시스

침공 두 달을 넘어선 러시아는 제3국으로 확전까지 언급하기 시작했다. 다음 타깃으로 비(非)나토 회원국인 몰도바가 전운에 떨고 있다. 러시아가 동남부전선을 뚜렷한 성과로 완결 짓지 못하고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함락과 탈환이 반복된다면 전쟁 장기화를 피할 수 없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불리하던 초기와 달리 영토문제는 포기할 수 없다며 말이 달라졌다.

반면 경제제재의 효과가 갈수록 위력을 더할 거란 점에선 단기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러시아가 국제사회 제재를 언제까지 견딜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영국의 싱크탱크 CER경제회복센터 등은 러시아가 쓰는 전쟁비용이 초기 70억 달러 정도였으나, 이후엔 탄약과 보급품 확대, 미사일 발사로 하루 200억 달러(약 25조 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했다. 이 분석이 사실일 경우, 사흘이면 자국의 한 해 국방예산(620억 달러·2020년)을 날리는 셈이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서방을 향해 3차 세계대전까지 들먹거리고 있다. 무리한 전쟁을 시작한 푸틴이 자기모순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전세가 뜻대로 전개되지 않을 경우 핵무기를 동원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유럽 전체를 인질로 도박을 벌이는 경우다. 이미 미국인 10명 중 7명은 미군이 결국 우크라이나에 파병될 것으로 본다는 여론조사(NBC방송)도 나왔다. 특히 응답자의 82%는 이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가장 위험했던 1962년 미소 간 ‘쿠바 위기’가, 60년 만에 푸틴과 바이든의 ‘핵무기 치킨게임’으로 살아날 공포가 거론되고 있다.


박석원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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