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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셉(RCEP)? 이 낯선 단어에 한국경제 '성공 열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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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2022년 현재 한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은 18개다. 다른 나라들보다 다소 늦은 2004년 칠레와 첫 FTA를 맺은 한국은 불과 18년 만에 전 세계 주요국과 FTA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또 이스라엘 등 4개국과 FTA 서명을 끝내고 발효를 기다리고 있으며, 에콰도르 등 10개국과는 최종 협상 중이다. 한국의 FTA망이 아프리카 등 일부 저개발국을 제외한 전 세계를 촘촘히 엮는 그림이 완성되는 셈이다.
워낙 수도 많고 동시다발로 협상이 진행ㆍ발표되다 보니 언젠가부터 국민들에게 FTA 체결은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첫 FTA 국회 비준 당시 "국가의 기반인 농업이 무너질 것"이라며 극렬한 반대시위가 벌어졌던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무관심하다.
지난 2월, 역대 최대 규모의 ‘초대형 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한국에서 발효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선 정국에, 정점으로 치닫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를 향해 모든 뉴스가 집중됐을 뿐 RCEP은 "또 하나의 FTA가 추가 됐구나" 정도로만 여겨졌다.
과연 그럴까. RCEP의 외관부터 차분히 살펴보면 일반적인 양자 FTA에서 볼 수 없던 이질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올해부터 발효된 RCEP의 참여국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10개국과 한국과 중국ㆍ일본ㆍ호주ㆍ뉴질랜드 등 무려 15개국이다. RCEP의 수출입 물동량은 전 세계 교역의 31.9%를 차지하며, 국내총생산(GDP) 역시 30.8%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팔리는 물건 셋 중 하나가 RCEP에서 생산되거나 유통되고 소비된다는 얘기다. 일단 규모 면에선 한국의 기존 FTA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그럼에도 "덩치만 클 뿐, RCEP도 기존 FTA와 효과는 같을 것 아니냐"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이 지적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타 FTA와 마찬가지로 RCEP도 순차적으로 참여국 간 수출입 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원산지 규정을 완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긴 하다. 다만 RCEP은 하나의 조약으로 15개 모든 국가에서 관세를 내지 않는 것은 물론 원산지도 누적해 교류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궁극적으로 역내 수출입의 걸림돌을 모두 제거해 참여국들을 하나의 경제블록으로 묶어놓겠다는 의미다.
어려운 국제경제 용어의 연속이지만, 15개국에서 관세를 철폐한다는 RCEP 차별성은 상당한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수출이 성장의 핵심인 한국은 절대 간과해선 안 되는 지점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 중 하나인 디스플레이 모듈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한국기업은 중국ㆍ한국ㆍ베트남ㆍ일본ㆍ말레이시아ㆍ호주 등 6개국에서 생산된 9개의 핵심 부품을 각각 베트남 공장으로 보내 최종 조립한 뒤 완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산지 규정을 충족해 관세 면제를 받는 부품은 한국과 베트남산 4개가 전부다. 최종 공정이 베트남에서 진행되다 보니 한-베트남 양자 FTA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RCEP이 적용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중국 등 나머지 4개국도 RCEP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들 국가에서 들여온 부품도 동일 원산지로 인정돼 관세가 철폐된다. 이 경우 기존의 불필요한 수출입 비용이 제거되면서 생산단가가 낮아진다. 자연스럽게 한국기업의 순이익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RCEP은 권역 내 국가에 디스플레이 모듈 최종품을 수출할 때도 관세를 매기지 않는다. RCEP의 경제블록 안이라면, 관세를 잔뜩 짊어지고 수입되는 비(非) RCEP 권역 생산 물품과 비교해 가격경쟁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얘기다.
RCEP의 이점은 ‘다국가 원재료 누적 생산 방식’의 전자제품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의 또 다른 '효자' 수출상품 중 하나인 의류ㆍ신발ㆍ장갑 등 노동집약산업 또한 RCEP 발효로 수익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최근 20년 동안 베트남 등 아세안 개발도상국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한국과 일본ㆍ중국의 원사를 받아 의류 등을 봉제한 뒤 최종 수출을 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 다만 이들 국가는 상품을 자체 디자인해 판매하기보다는 △2단위 세번(稅番)변경 △재단 및 봉제 가공공정(SP) △부가가치 40% 충족 등 다양한 조건을 '원산지 충족 기준'으로 걸어 뒀다. 하나의 상품을 만들 때 여러 국가의 원사를 사용할 수 없게 하거나, 자국에서 최소한의 재단 등 공정을 거쳐야만 완제품 수출이 가능하도록 산업 보호장벽을 세워뒀다는 뜻이다.
‘완전한 경제블록화’를 추구하는 RCEP은 이마저 없앴다. RCEP은 개도국의 봉제산업 보호규정을 제거하고 '2단위 세번변경기준' 요건만 충족하면 ‘메이드 인 알셉(Masde in RCEP)'으로 인정하도록 규정했다. 그동안 한 국가의 원사만 수입해 추가 가공해야 했던 한국기업들엔 희소식일 수밖에 없다. 이제부턴 가격이 저렴한 복수 국가의 원사를 혼합해 당초 계획한 품질로 상품을 수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ㆍ코트라) 하노이 무역관의 김태윤 관세사는 "원산지 누적제가 핵심인 RCEP 특성상 한국처럼 여러 국가의 재료를 이용해 최종 생산품을 만드는 나라가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된다"며 "전자ㆍ봉제산업 외에도, 복잡한 FTA로 거래비용 절감 효과를 보지 못한 대부분의 한국기업들에 RCEP은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RCEP이 미래 수출의 ‘성공 열쇠’라면 우리와 유사하게 '다국가 원재료 생산방식'을 취하고 있는 경쟁국 중국과 일본 역시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지 산업계에선 "한국이 중국,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RCEP의 효과를 제대로 받으려면 안정적인 권역 내 생산기지 확보 여부가 중요한데, 한국에는 양국과 달리 베트남이라는 든든한 ‘제2의 경제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RCEP 내에서 최종 생산국도 원재료 공급국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머무르고 있는 게 약점으로 지적된다. 기초부품 공급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나, 한일에 비해 낮은 기술 수준의 공산품을 임가공하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이유에서다. 여기에 워낙 방대한 영토와 다양한 산업군이 자국에 존재해 원산지 누적제의 효과가 크게 다가오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일본은 뒤늦은 ‘탈(脫)중국, 생산기지 다양화 전략’이 뼈아프다. 일본 정부는 미중 갈등 이후 중국 진출 자국 기업들의 동남아 이전을 추진하고 있으나 생각보다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 등 '포스트 차이나' 국가의 주요 산업단지를 선점하다 보니, 일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예상보다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베트남과의 교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켜 왔다. 한국의 지난해 베트남 수출액은 567억2,900만 달러(약 71조 원)로, 전년보다 8,000만 달러가량 되레 증가했다. 수출품의 88%가 베트남에서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 보낸 중간재인 점도 큰 변화가 없다. 수출 단계에서 ‘메이드 인 베트남’이 찍힐 뿐, 최종 과실은 한국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취해 왔다는 의미다.
한국에 남은 변수는 베트남 통관 행정의 불확실성 정도다. 베트남은 지난 1월 RCEP 발효를 공식 선언했지만, 협정세율 등 세부항목은 오는 7월 정기국회를 거쳐 확정한다. 권준성 월드와이드 로지스틱스 상무는 "베트남 행정에 불확실성이 많아 꼼꼼하게 원산지 증명서를 검수하지 않으면 수출 이후 과징금을 물 가능성이 있다"며 "RCEP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한국기업의 전략적 접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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