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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도 성냄도 벗고... 전화도 안 터지는 산속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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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왕사로 널리 알려진 고려 말의 승려 혜근(惠勤·1320~1376)이 지은 유명한 시다. 이해와 타산으로 얽힌 세상사 번잡함을 초월한 선승의 내공이 느껴진다. 그의 고향인 영덕 창수면에 이 시와 꼭 닮은 공간이 있다.
2020년 한국관광공사가 힐링명상 분야 웰니스관광지로 선정한 ‘인문힐링센터 여명’이다. 여명은 창수면 소재지에서 운서산 자락으로 차를 몰아 길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다. 처음 도착해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꺼내든 사람은 십중팔구 당황하게 된다.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아주 운이 좋으면(?)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3G’ 신호가 한 칸 잡힌다. 산속에 자리 잡은 모양새도 봉황이 알을 품은 듯 포근하고 고요하다. 이른바 금계포란(金鷄抱卵)형이라 자랑하는 곳이 전국에 수두룩하지만 이곳만큼 딱 들어맞는 지형도 드물다. 차 소리는 물론, 전화 벨 소리까지 완벽하게 차단된 곳이니 명상에는 최적의 장소다.
센터를 운영하는 이태호 단장은 “명상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영감과 통찰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지혜로운 삶을 추구하는 행위인데 선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깨달음과 맥이 닿아 있다. ‘여명’은 새벽 해가 가장 빨리 뜨는 동해에서 밝은 지혜를 맞이하자는 의미로 지었다. ‘여행과 명상’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
여명은 1박 2일 또는 2박 3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입소와 동시에 한의학을 기반으로 체질과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명상 이론(기술과 원리)을 기본으로 익힌 후 기체조와 걷기명상 등을 진행한다. 그러나 명상이 전부는 아니다. 식사는 영덕 특산물인 대게, 복숭아, 송이, 고사리, 찰보리 등을 재료로 건강식이 제공된다. 만들기 체험도 병행한다. 참가자들 중에는 음식 양이 적어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은데, 소식을 하면 몸이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체험할 수 있다니 이것도 수련이다.
‘인문힐링’을 콘셉트로 하는 만큼 강연과 음악, 연극 공연도 진행된다. 밤이면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는다. 한옥 기둥을 연결해 해먹을 설치하고 밤하늘을 감상한다. 기와지붕 처마 위로 별빛이 총총히 쏟아지고, 산골짜기에선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참가자들이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시간이다.
TV도 인터넷도 없으니 밤에는 자연스럽게 독서를 하거나 일찍 잠자리에 든다. 휴대전화에 시달리던 심신도 무상무념의 평안을 찾는다. 2, 3일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도 아무 문제 없다는 걸 깨닫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인터넷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센터에 설치된 업무용 와이파이의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명상은 외부에서도 진행한다. 대표적인 곳이 여명에서 약 16㎞ 떨어진 영해면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숲이다. 아직 번듯한 이름도 없지만 요즘 영덕의 ‘핫플레이스’로 뜨는 곳이다. 약 6,000그루의 메타세쿼이아를 가지런히 심어 사진 찍기 좋은 산책로가 됐다. 수령이 15년에 불과하지만 하늘 높이 자란 나무에서 쏟아지는 초록 기운이 신선하다. 개인 소유지만 무료로 개방하는 마음 씀씀이도 높이 살 만하다.
또 다른 명소는 영덕에서도 물빛이 푸른 고래불해수욕장 솔숲이다. 약 4㎞에 달하는 긴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만 봐도 절로 명상이 될 것 같은 곳이다. 센터와 200m 떨어진 장육사 산책은 기본이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나옹왕사 생가지까지 산책하는 것도 괜찮다. 창수면 소재지 인근 가산저수지에서 약 1㎞ 떨어진 숲속에 있다.
여명의 명상 프로그램은 주로 교사 공무원 기업체 등 단체 위주로 운영하지만, 15명 이상이면 일반인도 신청(054-733-6284)할 수 있다. 1박 2일은 20만 원, 2박 3일은 35만 원이다. 화장실이 딸린 2~3인용 한옥 객실을 이용한다. 명상 시설인 만큼 흡연과 음주는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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