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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직원은 쓰는 육아휴직, 나는..." 정부센터 내 이주여성 차별·갑질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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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국인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쓸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외국인인 제게만 어렵다고 했어요."
여성가족부 산하 가족센터에서 이중언어코치로 일하는 베트남 출신 40대 결혼이주여성 A씨는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쓰려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차별받고 싶지 않아 한국 국적까지 취득한 이후였지만 소용없었다.
A씨는 "업무를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육아휴직이 안 된다기에 출산휴가(90일)를 마치자마자 어린이집에 보내려 했지만 3개월은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결국 센터에 사정한 끝에야 2개월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다. 법에서 보장하는 육아휴직 기간은 1년이다.
일터로 돌아온 이후로도 '워킹맘'의 괴로움은 계속됐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생후 1년 미만의 유아를 가진 여성 노동자가 원하면 1일 2회 각각 30분 이상의 유급 수유 시간을 주도록 정하고 있으나 이 역시 거부됐다. 1시간 빨리 퇴근해야 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A씨의 경우처럼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정부의 센터 내에서 이주여성 차별이 심각하다는 폭로가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의 조사에 응한 센터 이주여성 직원 10명 중 무려 9명이 차별을 느끼고 있었다.
육아휴직 사건 이후 A씨의 상사는 직원과 센터 이용객이 보는 앞에서 A씨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한국에 온 지 몇 년째인데 아직도 한국말을 제대로 못한다'라고 면박을 줬다. 창피함에 얼굴이 화끈거려 A씨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만 싶었다고 한다. 다른 직원들에게 'A씨가 센터 분위기를 망친다'라고 험담을 하면서 그를 제외한 업무 메신저방이 만들어지는 등 따돌림도 심해졌다.
A씨가 정신과에 다니며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등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도 센터 내 한국인 직원은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갔다. 이런 피부에 직접 와닿는 차별이 더욱 힘들었다. 그는 "결혼이민자들이 한국에서 잘 살아가도록 돕는 기관인데, 정작 그 안에서 일하는 결혼이민자를 왜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가 이달 5일부터 18일까지 가족센터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 11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실시한 결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과 비교했을 때 차별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86.4%(102명)에 달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인권침해를 경험했다는 이들도 10명 중에 4명(39%)이다. 구체적으로 '부당한 지시 및 언사'(25.4%), '출신국 비하'(20.3%), '폭언'(13.6%) 등의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한다는 이들(36.5%)뿐 아니라 A씨처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주 노동자도 7.6%나 됐다.
이번 조사에는 결혼이민자가 채용 대상인 통·번역지원사와 이중언어코치가 주로 응했다.
"통·번역지원사란 이름만 그럴듯하지 가족센터의 잡일을 떠맡아 하면서 최저임금을 받아요. 그러면서도 '월급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는 식이예요.”
몽골에서 온 B씨는 가족센터의 통·번역지원사로 채용됐지만, 이중언어코치, 다문화 사례관리자 등 업무 외 일까지 쏟아진다. 센터에 몽골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B씨뿐이어서다. B씨는 "다문화 사례관리자가 따로 있는데도 한국인이다보니 이주여성들은 아무래도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라 체류 자격 등의 문제도 자주 생겨서 스스로가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이나 대사관 직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의 조사에서도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 외 다른 업무를 경험한 적 있다는 이들은 94.1%(111명)로 거의 전부였다. 다른 업무에 치여 원래의 일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는 답변도 절반(50%·59명)에 달했다. B씨 역시 퇴근 후 집에서 일하는 날이 적지 않다. 가족센터에서는 이런 추가 업무를 '당연하게' 여긴다. 추가 수당은 기대하기 어렵다. 시간 외 근무를 한 만큼 수당을 받고 있다는 응답은 절반도 안 되는 46.6%였다.
그는 "다문화 가족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곤 있지만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면서 일도 늘어나는데 비해 업무 구조는 그대로"라며 답답해했다.
급여(호봉·수당 미적용) 차별도 심하다. 가족센터의 이주여성 중 임금에 호봉 적용이 되고 있다는 답변은 단 11.9%(14명)였다. 나머지는 1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같은 돈을 받는다는 의미다. 반면 내국인 직원들은 호봉 기준표에 따라 매년 임금이 오르고 승진 기회도 얻는다.
중국 출신 이중언어코치 C씨는 "벌써 8년을 같은 일을 하는데 11개월 일하고 입·퇴사를 반복하는 계약서를 써왔다"며 "급여는 매년 최저임금에 딱 맞춰서 받게 된다"고 했다. 승진이나 근속 수당은커녕 퇴직금도 기대하기 어렵다.
여가부가 2020년 권인숙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결혼이민자만 채용하는 이중언어코치의 한 해 평균 임금은 2,632만 원, 통·번역지원사는 2,561만 원으로, 센터 행정직원 평균 임금인 3,428만 원에 크게 못 미쳤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월급이 약 50만 원의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C씨는 올해 1월 연차수당과 명절수당을 포함해 270만 원을 받았으나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센터의 통·번역지원사는 같은 달 326만 원을 받았다. 가족센터는 여가부 지침을 따르는데 사업 예산은 전국 모두 같지만 인건비 기준이 따로 없이 사업비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등은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각각 여가부와 고용노동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진정을 하기도 했다. 가족센터 등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노동자에 비해 임금과 승진에 있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달 해당 진정 사건에 '기각' 통지를 내렸다. 인권위는 "주로 내국인이 수행하는 기본 사업과 진정인들의 다문화 특성화 사업의 취지 및 수행 내용이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봤다.
다만 "업무 내용이 다른 점을 감안하더라도 급여 수준이 내국인에 비해 상당히 낮게 책정되어 있는 점 등은 결혼이민자라는 이유로 실제 근로 가치에 적정한 평가가 이뤄지는지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여가부 다문화가족과 관계자도 "이주 노동자가 일하는 통·번역지원사와 이중언어코치뿐 아니라 내국인이 종사하는 사례관리자나 언어발달지도사도 직무급제 적용을 받는다"라면서 "직무에 따른 차이지 국적에 대한 차별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C씨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센터에서 일하는 한국인처럼 경력에 따른 호봉제를 적용받거나 동일한 수당, 또 전문성을 인정받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의 여가부 폐지 움직임은 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새 정부에서 다문화 가족과 이주여성에 대한 복지가 영향을 받을까 우려가 된다'는 이번 조사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은 10명 중 8명이었다. C씨는 "여가부에 가족센터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알렸으나 지금까지 해결이 되지 않았다"며 "부처가 없어진다는데 이제는 어디에 이런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인터뷰에 응한 결혼이주여성들은 기사에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당부를 했다. 직장에서 꼬투리 삼아 괴롭힘이 더해지거나 일자리를 아예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남편이 일자리가 없거나 건강 문제로 생계를 홀로 책임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이주여성들로서는 실직이 가장 무섭다.
큰마음을 먹고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A씨는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을 위해 노무사를 찾았지만 '한국 사람들도 다 근로기준법 지켜가면서 사는 것 아니다'라는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기껏 용기를 냈지만 다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한국인이었어도 이렇게 했을까요. 차별을 당하지 않고자 한국 국적을 취득해도 여전히 일터에서 '야, 외국인'이라고 불리며 가장 험하고 궂은 일을 떠맡게 되는 나라가 과연 다문화 국가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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