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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이 흥정 대상이냐"··· 정치권 바라보는 법조계의 냉소

입력
2022.04.26 04:30
2면

"중재안 위헌 소지... 재논의 수순 당연"
국민의힘 사흘만에 합의 뒤집기엔
"尹당선인에 대한 충성 경쟁" 지적

이준석(가운데) 국민의힘 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수완박'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이준석(가운데) 국민의힘 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수완박'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국민의힘이 25일 더불어민주당과 합의했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을 재논의하기로 결정하면서, 정치권을 향한 법조계의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검수완박' 입법 추진을 강하게 반대해온 검찰뿐 아니라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도 "국회가 독선적 의사결정으로 형사사법체계를 정치화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검수완박' 졸속 처리에 여야가 공모

법조계에선 국민의힘이 '검수완박' 중재안을 사흘 만에 재논의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당연한 수순으로 평가한다. 형사사법체계를 70년 만에 바꾸는 중대 법안을 발의하고도, 법조계·학계·시민단체 의견은 전혀 수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여야가 중재안에 합의했지만, 합의 내용을 법문화하고 성안하는 단계에서 결렬될 게 뻔하다는 얘기가 빈번하게 나왔다"며 "위헌 소지가 다분한 법안을 여야가 합의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밝혔다.

여야 합의로 마련된 중재안을 '정치적 야합'의 산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법안을 법안 그대로 보지 않고 양측의 정치적 입장을 모두 반영하다 보니 곳곳에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야가 6대 범죄(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가운데 부패·경제범죄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합의했는데, 어떻게 부패·경제 범죄와 공직자·선거 범죄를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있느냐"며 "선거법 위반 사건 공소시효가 6개월에 불과해 검찰 수사를 안 받겠다는 여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자신들을 향한 선거범죄 수사를 검찰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검찰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1부는 이날 입장문에서 "이같은 법안을 만들겠다고 합의한 여야 정치인들 역시 앞으로 영원히 검찰 수사를 받지 않기 위해 야합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이와 관련해 "선거사범의 경우 검찰과 경찰이 핑퐁식으로 떠넘길 경우 공소시효 도과로 기소가 불가능해질 수 있어, 공소시효를 늘리거나 단서조항을 만드는 게 우선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탓에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검수완박 법안 처리에 대해 "중재안을 기초로 여야가 조금씩 양보해 합의처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낸 것을 두고는 검찰 내에선 싸늘한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한 지방검찰청의 부장검사는 "문 대통령 주문은 야합의 결과물을 민주주의 결과물로 받아들이라는 것인데 민주주의에 걸맞는 절차가 담보됐는지 의문"이라며 "또한 중재안 내용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여야가 조금씩 양보해봐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방문한 뒤 떠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방문한 뒤 떠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검수완박 이슈보다 충성경쟁이 우선인가

윤석열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국민의힘 대표와 원내대표가 당선인 의중에 따라 입장을 선회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민의힘이 사흘 전에 민주당과 합의해 의원총회 추인까지 마친 사안을 손바닥 뒤집듯 없던 일로 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는 전날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직접 통화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검수완박 관련 여야 합의 입법 추진은 무리"라며 최고위원회의에서 중재안에 대한 재검토를 주문했다. 박병석 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에 직접 서명한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박 의장과 긴급 면담을 하고 재논의 의사를 전달했다.

지방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윤 당선인이 명시적으로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의사를 보이자마자 국민의힘 지도부가 입장을 선회하는 것을 보니 씁쓸하다"며 "검수완박 법안이 윤 당선인에 대한 충성 경쟁 탓에 흥정 대상이 돼버린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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