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입력
2022.04.23 00:01
구독

[전문의 건강 칼럼] 김훈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생리가 1년 이상 하지 않으면 ‘폐경’이라고 정의한다. 적어도 의학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폐경을 그렇게 쉽게 진단할 수 있을까. 사실 폐경이라고 이야기하려면 생각해봐야 할 것이 꽤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갱년기(폐경 주변기 혹은 폐경 이행기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보지만) 증상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폐경이 될 나이라 하더라도 다른 질환, 예를 들어 갑상선 질환, 유즙 분비 호르몬 상승 등이 나타날 수 있기에 혈액검사와 초음파검사를 시행한다.

폐경 검사 필요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다양한 정보를 환자가 받아들이고 조합하는 문해력(literacy)은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환자가 설명을 잘 이해했는지 항상 궁금하지만 테스트해볼 수 없는 노릇이라 난처하기도 하다.

그래서 폐경 검사를 받는 환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부 사항 첫 번째. 병원을 찾았을 때 폐경과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환자가 어디까지 이해했는지 의사도 알 수 있어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들의 질문에 기꺼이 답할 준비가 돼 있다. 다만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질문 두세 가지를 미리 쪽지에 적어온다면 더 환영을 받을 것이다.

검사하기 전에 폐경이 확실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느낌으로 진료할 수 없으므로 위에 이야기한 검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폐경이 되기 시작하면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얼굴ㆍ목 등이 후끈 달아오르는 안면 홍조 또는 열감이 가장 흔하고, 땀이 날 수도 있다. 심하면 땀이 흘러내려 얼굴 화장이 지워진다고 불평하기도 하고, 하던 일을 멈춰야 할 정도다.

잠을 자다가 땀이 너무 흘러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또한 잠자다가 요의를 느껴 잠을 깰 때도 많고, 여성호르몬 분비가 줄어들다 보니 골밀도도 빠르게 감소해 골다공증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런 증상은 참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폐경은 병이 아니라고 여겨 병원에 오기를 꺼린다. 게다가 폐경은 ‘경증 질환’으로 분류돼 있어 대학병원에 오면 환자가 내야 하는 본인 부담금이 커진다. 정부에서는 폐경을 가벼운 병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폐경 증상이 생겨도 산부인과가 아닌 다른 진료과로 가서 호소하면서 호르몬 치료를 고민하면 ‘그렇게 걱정되면 참으면 되지’라고 핀잔을 듣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러나 폐경 증상은 쉽게 참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미국보다 숫자가 적지만 60%의 여성이 안면 홍조나 열감을 호소하고, 80세까지 이런 증상이 사라지지 않을 때도 꽤 있다. 이런 증상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기에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다.)

당부 사항 두 번째. 폐경 관련 증상이 나타난다면 참지 말고 의사와 상의하도록 하자.

호르몬 치료를 반드시 권하지는 않을 것이다. 득실을 따져보고 환자에게 도움이 될 때 추천하지 그렇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또 환자에게 득이 많다고 여겨 시작했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중단하기도 한다. 다만 호르몬 치료를 중단하고 싶다면 어떻게 할지 질문하시라. 치료를 중단하려고 의사와 상의하지 않고 약을 띄엄띄엄 복용하는 환자가 있는데, 그러면 자궁이 있는 여성은 출혈이 생길 수 있기에 권하지 않는다.

폐경 때가 되면 다양한 일이 생긴다. 정년 퇴직이 삶의 전환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자녀들이 훌쩍 커서 엄마에게 더 이상 따뜻하게 대하지 않을 때가 많다. 남편도 젊을 때와 달리 남처럼 느껴질 때도 많을 것이다.

폐경 증상으로 몸이 힘든데 마음까지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형제자매도 전처럼 자주 왕래하지 않다 보니 그런 사람이 없을 때가 많다.

친한 친구에게도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진료실에서 ‘이러저러해서 힘들지 않느냐’라고 환자에게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눈물을 보이면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필자도 폐경을 겪는 환자들과 나이가 비슷해지다 보니 이들을 잘 이해하게 됐고 환자가 미처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을 조금은 끌어낼 수 있게 됐지만 환자들의 마음을 다독이기에는 병원은 완벽한 곳이 되지 못한다는 게 아쉽다.

당부 사항 세 번째. 폐경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폐경이 되는 50세는 100세 시대에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시기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삶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속상하고 우울한 일이 있다면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일상에서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일이나 취미를 만들면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다.

김훈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김훈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