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마님

입력
2022.04.23 04:3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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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집에는 안방이 있다. 굳이 공간 안에서 설명하자면, 안방은 집 안채 부엌에 딸린 방이다. 그러나 그보다 안방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주인이 거처하는 방이라는 점이다. 그 방을 우리는 큰방도 아니고 중심방도 아니고 '안방'이라 부른다. 규합, 내방, 내당, 내침, 실규, 안 등 안방에 비슷한말과 방언이 많은 것도 안방의 무게감을 더한다.

안방이 들어간 관용 표현도 많다. '사돈네 안방 같다'는 감히 넘겨다보지 못할 만큼 어렵고 조심스러운 곳을 비유하는 말이고, '행랑 빌리면 안방까지 든다'는 넘겨봐서는 안 될 곳을 염치없이 넘어오는 것을 빗댄 것이다. 한마디로, 안방은 한 가정의 중심에 있어 타인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곳이 강조되어 있다. 바로 그곳에 '안방마님'이 있다. 안방마님은 안방에 거처하며 가사의 대권을 가지고 있는 양반집의 마님을 이르던 옛말이다. 흔히 야구 경기를 이끌어가는 포수를 안방마님이라 하는데, 이것은 축구에서 골키퍼를 문지기라고 하는 것과 비교된다. 경기 내내 공을 관리한다는 면에서 안방마님의 역할과 비슷한 면이 보인다.

그런데 안방의 주인이 '마님'으로 불릴 때는 권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러한 호칭은 스스로가 원해서가 아니라 실제 이웃의 평가를 통해 남는 것이다. 재산으로 위력을 떨치려던 안방마님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 된 안방마님 말이다. 큰 곳간을 꼼꼼하게 잘 관리하다가도 지역사회가 어려울 때 곳간을 풀어 큰마음으로 곁을 돌본 분들이 역사 속에는 많다. 사실 광에서 인심 난다고, 자신이 넉넉해야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부유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광을 선뜻 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수확한 곡식들로 가득한 곳간 문을 연 마음씨 좋은 부자를 누군가는 평생 갚을 은인으로 새겼을 것이 상상이 된다.

권리와 의무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다. 하나만 취하고 다른 하나를 버리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한국의 드라마가 세계로 뻗어가면서 예전에는 외국에서 거리감을 느꼈을 사극도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대사, 배경음악, 등장 소품 등에서 사극을 현대화한 노력이 큰 덕분이다. 이에 비해 등장인물은 여전히 옛날에 대한 고정관념에 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안방마님은 더욱 그러하다. 존경받을 만한 안방마님들을 드라마에서 만나며, 지역사회의 구심점이 되었던 안방마님에 대해 오늘날 자라나는 세대들이 배울 수 있기를 감히 제안해 본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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