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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천 위에 수놓았더니 찾아온 것 [마음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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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 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저 단추도 혼자 못 꿰는데 괜찮나요?"
'패브릭(천) 매체를 활용한 콜라주(Collage·여러 요소를 한 데 오려 붙이는 예술기법)를 통해 마음의 방을 들여다본다.' 마음돌봄에 관심이 많은 기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프로그램 소개글이었지만 이내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고백하자면 혼자 수선은커녕 바느질도 제대로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창조를 위한 가장 좋은 준비는 창조 행위 그 자체"라는 답을 듣고 일단 도전해보겠다고 다짐, 고민을 내려놓고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지난달 16일 저녁 찾아간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돌핀아트스튜디오'에서는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형 관엽식물과 아크릴 작품, 그림책 등이 곳곳에 놓여 있어 낯선 공간에서의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마음의 방'을 무턱대고 표현할 수는 없을 터. 우선 참가자들과 함께 명상을 하면서 각자 떠오르는 감정들을 살펴봤다. 대학원에서 미술치료교육을 전공한 문현경 공동대표는 "자신의 마음을 방이라고 상상하면서 그곳이 어떤지 바라보라"고 안내했다.
이후 감정카드가 놓인 책상으로 이동했다. 감정을 언어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용도다. 한쪽에는 감각과 관련된 형용사가, 다른 쪽에는 감정과 연관된 형용사가 구분돼 있었다. 각자 고른 단어로 자신의 마음의 방이 어떤 모양인지, 추운지 더운지, 어떤 냄새가 나는지 등을 짧게 적는 시간도 가졌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직장인 이소정(30)씨는 '감각언어'로 '따뜻한', '아늑한', '밝은', '소박한'을 골랐다. 이씨는 "따뜻하고 작은 방에 밝게 촛불을 켜놓고 가족과 함께 있는 방이 떠올랐다"며 "대화 없이 장작을 지피는 소리와 물이 끓는 소리만 들리지만 그 속에서 편안을 느끼는 나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감정언어'로는 '미안한', '그리운', '감사한', '공허한'을 꼽았다. 그는 "아버지가 최근에 돌아가셨는데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아버지와)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생전 고마움을 몰라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감정카드를 고르고 글을 쓰면서 마음의 방을 정리한 참가자들은 이후 천을 꾸미는 작업을 시작했다. A4 용지 한 장보다 약간 큰 하얀 천 위에 '마음의 방'을 시각화하는 일이다.
문 공동대표가 제공한 바구니에는 색종이만한 형형색색의 천 조각들이 들어 있었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의 방'을 형상화하는 일. 그것도 평소에 자주 사용하지 않던 천이란 소재로 다루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색도 질감도 모두 각기 각색이라 고르기는 것부터 어려웠지만 그저 끌리는 대로 선택했다. 문 공동대표는 "기술적으로 완성시킨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의 감각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라"고 조언했다.
엉킨 실을 풀러 천 조각을 묶고 꿰면서 "참 아날로그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되는 바느질 작업에 몰입하다보니 세상의 시름을 잊을 정도였다. 십자수나 뜨개질처럼 단순 노동을 그렇게 싫어하는 데도 말이다.
약 한 시간 후 작품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학에서 영화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박신희(24)씨는 "좋아하는 물건들로 가득하지만 어딘가 건조한 마음의 방을 표현해봤다"며 "명상을 하는데 갑자기 고등학교 때 길렀던 애완동물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이씨도 "최근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워서인지 따뜻한 톤의 천과 보슬보슬한 질감에 손이 많이 갔다"고 전했다.
기자는 종잡을 수 없는 마음밭을 우주 세계로 표현했다. 사회에 잘 융합하는 성격을 하얀색 하트로, 약간 어둡고 복잡한 내면은 검정색 천으로, 그러면서 튀고 싶은 마음은 노란 형광색 느낌표로 형상화했다.
바늘땀은 삐뚤빼뚤 엉성했지만 마음을 천으로 그려내고 나니 내면을 정리한 기분이었다. 이씨도 "창작이라는 영역이 어렵고 멀기만 했는데 이끌리는 대로 작은 천 안에 표현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의 끝으로 각자의 결과물을 벽에 걸 수 있게 밧줄을 덧대는 작업을 했다. 기자는 방이 지저분해질 때면 이따금씩 벽에 걸린 작업물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지금 내 마음의 방이 어지럽구나." 그리고 청소를 하며 마음의 방도 함께 정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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