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루팡'들을 어찌할까

입력
2022.04.23 10: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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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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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타트업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했다가 '코로나 루팡'이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농땡이를 부리며 월급만 가져가는 사람을 비꼬는 신조어 ‘월급 루팡’에 빗대, 코로나19 상황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었다.

많은 사례들이 나왔다. 모 대표는 경력직 사원을 뽑으면서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지원자에게 원하는 면접 일정을 물어봤는데 아무 때나 상관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의아하게 여기는 대표에게 지원자는 "재택근무 중이어서 괜찮다"는 말을 해서 마침 전원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그 대표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물론 면접도 온라인으로 보기 때문에 업무에 큰 지장이 없을 수도 있지만 상황이 개운치 않았다. 곁에 있던 다른 대표도 "재택근무를 하면서 여기저기 면접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거들었다.

재택근무를 이용해 부업을 하는 경우는 애교이고 심지어 이중 취업 사례까지 나왔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개발자를 고액 연봉을 주고 데려 왔는데 알고 보니 3, 4군데 회사 일을 함께하고 있었다. 결국 그를 채용한 대표는 괘씸한 생각에 다른 회사 대표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얼마 전 언론에도 보도된 코로나 확진자가 사용한 마스크를 온라인 중고장터에 내놓은 사례는 도덕적 해이 수준이다. 확진자의 마스크를 이용해 고의로 코로나에 감염되면 회사를 며칠 쉴 수 있다는 노림수였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온 것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기업들도 근무 방식을 놓고 고민하기 때문이다. 모 스타트업 대표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원하는데 팀장들이 확고하게 반대를 해서 고민이라고 했다. 팀원들이나 팀장들이나 나이 차이가 거의 없는 20, 30대여서 세대 차이의 문제는 아니었다. 팀장들이 반대한 것은 재택근무 전과 후의 업무 성과가 눈에 띄게 차이 난다는 이유였다.

재택근무를 하고 냉정하게 성과로 평가하면 될 텐데 왜 고민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구글 등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하는 방식이다. 예전에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본사에 취재 갔다가 의아한 풍경을 본 적이 있다. 주차장에 가득 서 있는 수십 대의 버스였다. 구글 직원에게 물었더니 새벽에 퇴근하는 직원들을 위한 배려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업무 목표 달성을 위해 새벽 1, 2시에 퇴근하는 직원들이 꽤 많다고 했다. 그렇게 일한 만큼 보상받고 그렇지 못하면 바로 퇴사였다. 회사나 직원이나 당연한 합의 사항인 만큼 서로 원망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경험한 사람들 중에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출퇴근에 시간과 비용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기업이나 직원 모두 비용 절감 및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근무 방식의 변화에 걸맞는 사고와 제도의 변화다. 기업이든 노동자든 달라진 근무 형태만큼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하고 이를 제대로 평가에 반영할 준비가 돼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즉 외형의 변화보다 내용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루 8시간을 사무실에 붙잡아 둔다고 꼭 업무 효율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 일하든 하루 1시간만 일해도 성과가 좋으면 마다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결과와 상관없이 무턱대고 재택근무를 주장하는 것도 옳지 않다. 중요한 것은 노동 시간과 장소보다 노동의 질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근무 형태는 양이 아닌 질을 따지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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