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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의회주의 '완전박탈'... 국회법 깔아뭉갰다

입력
2022.04.22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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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근(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박홍근(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대한민국의 의회주의가 '완전 박탈' 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강행을 위해 국회법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국회법이 떠받치는 대의민주주의를 유린했다. 힘으로 법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입법기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했다.

①'소수정당 보루' 안건조정위원회 무력화

국회 상임위 안건조정위는 정당들의 의견이 갈리는 쟁점 법안을 다수당이 일방 처리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국회법상 기구다. 안건조정위에 올라간 법안을 최장 90일간 심사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강제 숙의 기간을 갖게 하자는 취지다.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위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 안건조정위로 보냈다. 그러나 '토론'이 아닌 '횡포'를 위해서였다. 법안 심사·의결에 시간이 걸리는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를 건너뛰고 안건조정위라는 패스트트랙에 태운 것이다.

안건조정위원 정원 6명은 여당 의원 3명, 야당 의원 3명으로 구성된다. 야당 몫 1명은 비교섭단체에 돌아간다. 민주당은 비교섭단체 몫을 민주당 성향 무소속 의원에게 돌렸다. 안건조정위원 지정 권한을 지닌 법사위원장이 민주당 소속 박광온 의원이라 가능했다.

안건조정위는 사실상 민주당 4명 대 국민의힘 2명 구도가 됐다. 민주당이 4명에 집착한 건 안건조정위 종료가 6명 중 4명의 찬성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안건조정위를 열자마자 닫겠다는 게 민주당의 전략이다.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기구를 다수당의 이해에 복무하는 기구로 전락시킨 것이다.

②'검사 배제' 위해 편법 사ㆍ보임 되풀이

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원 사·보임 카드도 편법으로 썼다. 검수완박 입법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검사 출신 의원들을 법사위에서 배제하는 데 활용했다. 소병철, 송기헌 의원을 사임시키고 검수완박 강경론자인 민형배, 최강욱 의원을 보임시켰다.

국회법은 이 같은 정략적 사보임을 허락하지 않는다. 국회법(제48조6항)엔 “국회 임시회에선 회기 중에 개선(사·보임)을 할 수 없고, 정기회에선 상임위원 선임 또는 사·보임 후 30일 이내에는 사·보임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임시회기인 4월 국회에선 사·보임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국회법상 ‘상임위원이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국회의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라는 조항을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 ‘검수완박 법 강행 처리'를 '부득이한 사유'로 해석해 사·보임 카드를 동원했을 가능성이 크다.

③민형배 위장 탈당… 누더기 된 정당정치

민주당은 법사위 안건조정위에 민주당 출신의 양향자 무소속 의원을 일찌감치 배치해 뒀다. '한 식구'라고 봤던 양 의원이 검수완박 강행에 반대한다는 사실이 20일 알려지자 발칵 뒤집혔다.

민주당은 포기하지 않았다. 민형배 의원을 이날 곧바로 탈당시켜 안건조정위 비교섭단체 몫 위원으로 밀어넣었다. 누가 봐도 '위장 탈당'이었다. 이로써 정당 정치의 의의와 대의민주주의 정신을 뿌리째 배반했다.

민 의원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광주 광산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지역 유권자들이 84.05%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몰아준 건 그가 민주당의 가치를 대변하는 정치인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 의원은 당적을 편리에 따라 벗어던졌다. 유권자들의 의사는 묻지 않았다. 검수완박 입법이 마무리되면 그는 당적을 되찾을 것이다. 그를 대표로 선출해 국회로 보낸 민의를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④또다시 필리버스터 무력화… 임시회 쪼개기 예고

국회법상 필리버스터(국회 본회의 무제한 법안 토론)는 소수당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후의 장치이다. 다수당의 법안 처리를 끝내 막을 수 없더라도, 반대 이유를 알리는 기회를 보장하는 게 목적이다. 다만 필리버스터를 무기한 허용하면 역으로 소수당의 횡포가 되는 만큼, 국회법은 ①국회 회기가 종료되거나 ②재적 의원(300명) 중 3분의 2(180명)가 찬성하면 필리버스터가 자동 종료되는 보완 장치를 뒀다.

민주당은 이 빈틈을 놓치지 않을 태세다. 국민의힘이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본회의 필리버스터를 시도할 경우 국회 회기 편법 쪼개기로 막을 준비를 하고 있다. 반발표 때문에 ②를 위한 180석을 채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목표는 5월 3일 열리는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을 공포해 쐐기를 박는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두고 볼 시간이 없다는 의미다.

민주당이 필리버스터 무력화를 위해 쪼개기 임시회를 동원한 것이 처음도 아니다.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제정법 처리 때도 그랬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절차적 정의를 어기는 건 민주주의의 명분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타협과 협치의 공간을 없앨 경우 손해는 국민의 몫이고 정치는 후퇴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김현빈 기자
박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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