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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복지와 노인복지 사이… 요양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 장애인

입력
2022.04.24 12: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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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질환·치매 등 앓는 65세 이상 장애인
요양병원 등 노인요양시설 입소 쉽지 않아
장애인 거주시설은 노환 이해 부족해
"고령 장애인 특화된 요양시설 마련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최근 경기도에 있는 요양병원에 직장암과 치매를 앓는 70대 아버지의 입원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아버지가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전맹 시각장애인이라는 게 이유였다. A씨 아버지는 암 수술을 받고 부착한 인공항문을 상시 관리해야 하지만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엔 의료인이 없어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A씨는 "요양병원 입소가 절실한 상황인데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들어가지 못했다"며 "집에서 간병인을 두고 모셔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노환을 겪는 장애인들이 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만 65세가 넘은 장애인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이 가능할 경우 장기요양 등급을 받아 노인요양시설(요양원 및 요양병원)에 입소할 수 있다. 하지만 요양시설은 다양한 장애인 유형과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고령 장애인 환자를 받아들이길 꺼리는 게 현실이다.

2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행법상 장애인복지시설은 장애 유형별 시설 또는 중증장애·장애영유아·단기거주 시설로 구분해 설치 및 운영 기준을 두고 있을 뿐, 중노년 장애인이 거주할 수 있는 시설에 관한 규정은 없다. 현행 장애인거주시설과 노인요양시설이 통합된 개념의 시설이 없는 셈이다.

장애인거주시설과 노인요양시설은 각각 장애인 및 노인 돌봄에 특화된 교육을 받은 종사자들이 일한다. 돌봄이 필요한 고령 장애인은 양쪽 모두에서 적절한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A씨의 사례처럼,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지내던 이용자가 암과 같은 중증질환이나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이 나타났을 때 노인요양시설로 이동하는 일이 쉽지 않다.

장애인거주시설은 장애인의 노화나 질환에 대한 이해 부족, 열악한 주거환경 등으로 고령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 제공에 어려움을 겪는다. 중증장애거주시설 종사자 B씨는 "치매 환자에게 중요한 건 배회로 확보인데 시설에 그럴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며 "와상환자가 발생하면 방에 침대를 포함해 환자 상태에 맞는 설비가 구비돼야 하는데 지금 시설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노인요양시설 또한 장애인 수용에 적합하지 않다. 서울시 탈시설시범사업소에서 근무했던 물리치료사 박대성씨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교육과정엔 노인성 질환만 포함될 뿐 장애 관련 내용은 없다"며 "어렵게 고령 장애인이 입소하더라도 요양보호사들이 '우린 장애인 케어를 배운 적도 없다'며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울시복지재단이 서울 시내 장애인거주시설 27곳을 현장 조사한 결과 유사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전원이 원활하게 이뤄지는지를 묻는 질문에 17개소(73.9%)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다른 시설이 장애인에게 적합하지 않아서'(34.8%)가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고령 장애인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인 전담 노인요양시설이 필요하며, 장애인구 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시급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전체 등록 장애인 가운데 만 65세 이상 비중은 2010년 37.1%에서 2020년 49.9%로 증가했다. 2020년 신규 등록 장애인의 65세 이상 비중은 55.1%였다.

김현승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당장 모든 장애 유형에 노인 전담 의료시설을 설치하기 어렵다면 발달장애 등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맞춤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유형부터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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