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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인수위가 350개 공공기관장 명부 활용하도록 법제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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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논란 중 하나가 공공기관장 인사다.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가 투자 출자하거나 재정 지원한 기관의 장은 3년, 상임이사와 감사는 각각 2년으로 임기가 보장된다. 새 권력으로서는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정부 못지않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조직인데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 임기가 한참 남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무리수를 두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기관장 쫓아내기까지 갈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강요해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장이나 임원을 비리나 부실 경영이 아니라 단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쫓아내는 것은 이제 ‘직권 남용’의 범죄다.
지난해 말 기준 기획재정부 지정 공공기관은 모두 350개. 공기업이 36개, 기금 관리 등을 하는 준정부기관이 96개, 주로 연구기관인 기타 공공기관이 218개다. 이 기관의 전체 상임 임원 정원은 877명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 중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둔 기관장과 상임감사가 63%에 이른다. 공기업 기관장 절반이 앞으로도 2년 이상 임기가 남았다. 새 정부는 불편할 수도 있는 동거를 감수해야 한다.
인사행정 전문가인 김판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19일 연세대에서 만나 공공기관 인사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들었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인사제도비서관을, 문재인 정부에서 인사혁신처장을 지냈고 현재 유엔기관 인사를 담당하는 국제공무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공기관장 인사 논란은 노무현 정부 때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생긴 뒤 심해진 것 같다.
"공공기관운영법은 전두환 정부에서 제정한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과 노무현 정부에서 제정한 정부산하기관 관리기본법을 통합한 것이다. 기관장 인사 갈등은 임기를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인데 1983년 제정한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에 이미 이사장과 사장 및 이사 임기는 3년, 감사는 2년으로 정해져 있었다. 공공기관운영법으로 시작된 게 아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대통령이 바뀌면 주요 기관장이 알아서 물러나다 보니 임기와 관련된 충돌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을 뿐이다. 공직 사회에 자율성이 생겨나고 권리 의식도 높아지면서 차츰 이런 관행을 문제 삼게 된 결과다. 공공기관운영법에 적시된 임기에 상관없이 무리하게 사표를 강요하면 직권남용이라는 판결까지 나왔으니 기관장 임기 보장은 피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이 늘 임기 만료 전 기관장 교체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유는.
"정권이 바뀌면 정권 창출에 기여한 많은 사람을 챙겨야 하는 것이 정치 현실이다. 대선 캠페인 도와준 사람을 국정 운영에 활용할 필요도 있다. 정권 교체 등으로 물러난 고위공무원의 장래도 외면하기 어렵다. 공공기관 숫자는 한정됐는데 이처럼 자리를 기대하는 후보군이 너무 많아 생기는 문제다. 2020년 말 기준 공공기관장 평균 연봉이 약 1억8,000만 원, 상임이사와 감사는 1억5,000만 원 이상으로 장·차관보다 많다. 보수가 좋다는 현실적인 이유까지 겹쳐 자리 다툼이 일어난다."
-공공기관 임원 인사는 엽관제와 실적제라는 가치 충돌의 문제이기도 한데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 게 타당한가.
"주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상임기관장은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주무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뒤 경영 관리와 주요 사업에 대한 경영평가를 받는다. 제도적으로는 능력과 자질 중심의 공정한 선발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관장과 이사 및 감사 선정 과정에서 주무 부처 고위공무원이나 정권 창출에 기여한 후보를 고려해 왔다. 능력이나 자질이 비슷한 복수의 후보자 가운데 정권 쪽에 가까운 사람이 임명되는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가능하면 실적제 체제로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정권에서나 청와대가 모든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나온다.
"공공기관 350개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와 장관 등이 임명하는 자리로 대략 나뉘어 있다. 하지만 내부 기준으로 장관 임명 기관이라고 하면서 청와대가 개입하는 경우가 꽤 있을 것이다. 이걸 분류한 대로 지켜야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대통령 인사권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하느냐에 대해선 합의된 답이 아직 없다. 가능하다면 부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준을 지키는 게 맞다."
-그런 인사권 분류의 합리적인 기준이 있나.
"장·차관 등 정무직과 핵심 공공기관장 임명 등은 대통령 권한이고 인사수석실에서 담당한다. 장관은 총리의 제청을 받고, 차관은 장관의 의견을 듣는 것은 의견 수렴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많은 나라에서 부처 고위공무원단까지는 대통령실이나 총리실에서 관심을 갖고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외 각 부처에서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인사에 청와대가 일일이 개입하는 건 줄여야 한다."
-권력을 빙자한 주변의 자리 챙기기 문제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정무직이나 공공기관 임원 인사에는 정권 창출에 기여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로부터 다양한 경로로 인사 청탁이 들어온다. 공정성을 생각하지 않고 지지층 이해만 고려하거나 외부 인사 청탁에 휘둘릴 때 사고가 발생한다. 이를 최소화하려면 특정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할 인사수석과 비서관을 임명해 독립적으로 인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대통령이나 소수 권력층이 인사권을 좌지우지하면 좋은 인재를 널리 발굴하고 선택하기 위한 인사추천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자칫 인사수석실이 행정지원실로 전락할 수도 있다. 대통령이 인사수석과 비서관을 잘 선임해 최선을 다해서 인재를 구할 수 있도록 믿고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기관 임원추천위원회 제도나 임원후보 선발 절차를 더 강화해 공정성을 확보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제도 개선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지금 제도로도 공정한 추천이 가능하다. 실제 운영 상황을 보면 자격 미달자가 후보군에 들어 있을 때는 걸러질 수 있게 되어 있다. 참여한 사람들이 사명감을 갖고 하면 목소리는 낼 수 있는 구조다. 다만 여전히 목소리가 약한 경우가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임원 후보 선발 문화가 정착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관장 임기가 대통령 임기와 맞지 않아 인사 갈등이 불거진다며 아예 임기를 없애자거나 2년으로 줄이자는 의견도 나온다.
"공공기관장 임기는 안정성과 탄력성을 모두 봐야 한다. 임기를 너무 강조하면 안정성은 얻지만 인력의 탄력적 운용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 딜레마를 해결하려다 때로 사표를 종용하고, 그래도 안 되면 감사로 압박하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임기를 아예 없애면 그런 고민은 해소되겠지만 공공기관의 안정적 자율책임 경영을 강화하자는 임기제 취지와 충돌하므로 그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현재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장의 3년 임기를 상임이사나 감사처럼 2년으로 통일하는 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경영 실적에 따라 1년 단위로 임기를 연장하면 임기 말 임명돼 정권이 바뀌더라도 남은 임기가 지금처럼 길지 않아 부담이 덜할 것이다."
-공공기관장 인사 갈등을 푸는 방법의 하나로 미국식 ‘플럼북’(Plum Book)이 거론된다. 미국은 이를 어떻게 운용하나.
"미국은 대통령선거가 끝나자마자 의회에서 ‘미국 정부 정책 및 지원 직위 명부록’을 발행한다. 책 표지 색상이 익은 자두 색깔과 비슷해 플럼북이다. 상원, 하원이 4년마다 번갈아 내는 이 책에는 연방정부 고위 공무원 이상부터 장·차관급에 이르기까지 약 9,000개 주요 직위의 명칭, 현직자 이름, 임명 형태(대통령 임명직, 상원 청문, 경력직·비경력직, 한시적 임기, 별정직 여부), 보수 등급과 직급, 임기 여부, 임기 만료일 등의 정보를 담는다. 새 정부가 인사 계획을 수립하는 기초 자료다. 이런 자료가 공개되면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기관장 임기는 지켜주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공공기관 인사가 안정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은 정부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사기업 인사에서도 절차적 정당성을 매우 중시한다. 이를 위반하면 송사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법에 임기가 정해져 있으면 임기를 지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와 유사한 인사명부를 만들었는데 효과가 있었나.
"청와대 인사제도비서관으로 있으면서 아이디어를 내 중앙인사위원회와 같이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지방자치단체 및 정부산하기관을 망라한 ‘국가주요직위명부록’을 만들었다. 현직자, 직급, 임용 일자, 직전 직위 등은 물론 기관별 주요 기능과 조직 현황, 부서별 주요 업무와 조직도 등을 담아 미국의 플럼북보다 내용이 더 자세했다. 이 책자는 ‘종합 인사 상황표’ 같은 역할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행정부로 한정했지만 인사혁신처에서 국가주요직위명부록을 발행했다."
-공공기관 인사에서 플럼북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현재의 국가주요직위명부록은 행정부처 주요직은 파악할 수 있지만 공공기관은 빠져 있다. 관리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임원명부록을 대선이 끝나자마자 공개 발행하도록 하면 임원인사 계획에 도움 주는 것은 물론 공공기관 투명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지원 가능한 후보군들이 관심 갖고 계획을 세우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대통령직인수법 등에 명시해 정기 발행을 법제화하면 좋겠다."
-하지만 플럼북을 만들고도 문재인 정부에서는 인사 문제로 사법 처리된 사례가 나왔고 최근에는 알박기 인사 논란도 불거졌다.
"인사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지혜가 필요하다. 인사가 불가피한데 대상자가 반발한다면 상대의 입장을 들어보고 강요가 아니라 진솔하게 소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았고 실적도 좋다며 자리를 고집하면 대안을 제시해 돌파구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인사는 사리에 맞게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원칙대로 이상적으로만 가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고, 바뀐 현실을 인정하라며 윽박지르기만 해서도 안 된다."
-인사 대상인 기관장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지혜로울까.
"최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임기를 절반 정도 남겨두고 사표를 냈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새 정부가 연금개혁을 공약한 만큼 스스로 결단을 내릴 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사직을 다른 기관장들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적어도 주요 국정과제와 관련되는 기관장들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 해당 부처와 물밑에서 소통하지 않겠나. 하지만 시비가 벌어지고 압박 퇴출로 비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당선인은 대통령 권한을 가능하면 내려놓겠다며 청와대 기능 축소를 약속했다. 앞으로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해 유념할 부분이 있다면.
“대통령 권한을 가능하면 내려놓겠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공공기관 임원 인사는 대통령 임명과 장관 등 임명으로 구분된 인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장관이 알아서 정하는 기관인데도 실제로 청와대 조율을 거쳐 임명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이런 부분은 향후 공공부문 혁신과 공공기관 임원인사 혁신 차원에서 추가 개선책을 검토해야 한다.
대통령이 임명 권한을 내려놓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인사권을 넘기기만 할 게 아니라 얼마나 공정하고 투명하게 행사되도록 할지 제도적 뒷받침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청와대와 달리 부처별 인사는 국회의 견제도 현실적으로 멀고 언론의 감시 기능도 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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