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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당한 개들을 봤던 어릴 때 기억이 삶을 바꿨죠" [동물과 함께하는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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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해 일하는 직업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수의사, 사육사, 훈련사 등은 쉽게 떠올리는 동물 관련 직업입니다. 이외에 영화감독, 출판사 대표, 웹툰 작가 등 다른 직업을 갖고 동물을 위해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동물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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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단체 활동가는 관련 직업 중 가장 눈에 띈다. 동물권 향상과 인식 변화를 최전선에서 이끌기에 언론도 주목한다. 현장에서 세상의 편견과 무관심에 맞서는 일은 버겁다. 선배들이 시나브로 내딛은 발걸음 덕에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는 차츰 어엿한 직업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상업 영화 감독으로 세상에 먼저 알려진 임순례(62) 전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는 '동물단체 활동가 1세대' '동물권 대모'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19일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카라 더불어숨센터 '킁킁도서관'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어릴 적 트라우마가 동물 보호에 나선 계기였다"고 고백했다.
-12년간 맡았던 카라 대표직을 지난해 내려놓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재작년 환갑이 됐다. 예전부터 환갑이 되면 내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환갑 전후로 맡고 있던 직함들을 전부 내려놨다. 어느 자리든 10년이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진다. 또 다음 세대 능력 있는 친구들에게 넘겨줘야겠다 싶었다.
카라 대표를 처음 맡을 때부터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활동은 활동가에게 맡기고,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카라 사무실과 입양카페가 있는 더불어숨센터와 입양센터인 더봄센터를 지었다. 어느 정도 활동가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고 '내가 할 일은 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컸다. 일을 그만둔 건 아니다. 여전히 카라 이사이고 인터뷰 전까지 활동가들과 회의 중이었다. ”
-카라 대표로 활동하면서 이룬 가장 큰 성과는.
"개식용 종식의 밑거름을 놓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만든 '개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가 이달 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어떻게 결론 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10년 넘게 개농장 조사, 개농장 개 구조를 통해 근본적 정책 수립을 위해 힘써왔고 그게 이번 논의 기구의 초석이라 자부한다. 개식용은 사양산업이고 종식은 시기의 문제다."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동물 분야는 유난히 협력이 안 된다.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 수도 있지만) 힘을 합세해 동물을 위한 일을 더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연대체를 만들지 못한 게 굉장히 아쉽다."
-처음 카라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2005년 키우던 개를 잃어버려 백방으로 찾다 비슷하게 생긴 개를 구조하던 카라의 전신인 '아름품' 자원봉사자를 우연히 알게 됐다. 봉사자가 아름품 명예이사를 권유하면서 '이름만 올리면 된다'고 해 카라에 합류했다. 카라는 동물권 교육, 입법활동 등 돈 안 되는 일만 하고 있더라. (웃음) 지금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겠지만 교육과 법제도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4년 만에 카라 '대권'을 거머쥐었는데.
"2007년 카라 대표였던 조각가 강은엽 선생님으로부터 연세 때문에 더 이상 대표직을 맡기 힘이 드니 나보고 맡아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7년 만에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찍기 시작할 때라 바빴고, 대표는 말도 안 된다 생각했다. '영화 촬영에 얼마나 걸릴 것 같냐'고 해 2년 정도 걸린다고 답했다. 그사이 다른 대표를 뽑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카라가 2년 동안 다른 대표를 선임하지 않고 나를 기다렸다.
고심하던 중 우생순 개봉 후 평소 존경하던 티베트의 승려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인도 다람살라 법회에 참석했다.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깨달음이 아니다'라는 설법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법회를 다녀온 후 1주일에 하루 정도 투자하면 되겠다 마음 먹고 대표직을 수락했다."
-대표 취임 후 카라 규모나 업무가 급속도로 확장됐다.
"대표를 맡을 당시 후원금이 한 달에 350만 원 들어왔다. 상근 1명, 비상근 1명 월급 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다. 일복이 많은 건지 대표가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효리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씨가 봉사를 오면서 카라를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2014년 아름품 초기부터 정책을 도맡아 온 전진경 현 대표에게 상임이사를 부탁했다. 이후 좀 더 편하게 외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동물단체 근무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영화감독과 동물단체 대표를 병행하는 게 쉽진 않았다. 그럼에도 대표직을 맡게 된 건 식용으로 죽어간 개들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어서다. 개들에 대한 미안함이 원동력이 됐다. 50년 전 인천 변두리에 살 때 동네 주민들이 개를 풀어 키웠다. 엄마가 창문 밖으로 보면 개들이 한 군데를 향해 뛰었는데 나에게 온 거였다고 했다. 내가 개를 좋아해서 개들이 온 거다.
복날이 되면 그 개들이 개장수에 팔려가고 나무에 매달려 죽어가는 걸 봤지만 당시 초등학생인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이 얘기를 하면 눈물이 나고 목이 멘다. 너무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개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기여하겠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다."
-'미안해 고마워' 이후 동물 관련 영화를 제작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못 찍었다. 개식용 다큐멘터리 영화는 만들고 싶었는데 잔인하고 끔찍한 상황을 맞닥뜨려야 해 못 찍었다. 그 용기가 생기길 기다리고 있다. 어릴 때 수의사가 될까 했는데 중1 생물시간에 개구리 해부를 보고 충격을 받아 꿈을 접었다. 사람 나오는 영화도 폭력적인 건 못 만든다. 동물 관련 영화가 찍기 어렵고 컴퓨터그래픽(CG) 등이 필요해 제작비가 많이 드는 등 현실적 이유도 있다. 2013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방류를 위한 시민방류위원회 위원이었는데 제돌이가 바다로 가는 순간이 너무 가슴에 많이 남아 영화로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제돌이 영화는 꼭 만들고 싶다."
-잔인한 동물 학대가 늘고 있는데 원인과 대책이 있다면.
"사회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이 약한 존재에 대해 공격성을 띠는 것 같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물 학대 영상을 공유하면서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사회학자,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 단절되면서 옳지 못한 방향으로 분노를 분출하는 것 같다. 결국 생명 존중 교육과 더불어 동물 학대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병행돼야 한다. 동물 학대에 최고 형량을 적용하고 지금보다도 동물보호법이 더 강화돼야 한다."
-동물을 위해 일하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어릴 땐 동물과 가까운데 나이가 들수록 동물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반려동물을 위해 맛있는 고기 간식을 준다면 고기를 위해 희생된 닭이나 소에 대해 떠올려보고 자신의 반려동물이나 동물원 동물은 어디에서 왔는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
동물 관련 직업을 갖지 않아도 동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반려동물을 사지 않고 입양하거나 당장 키우기 어렵다면 봉사활동이나 후원을 할 수 있다. 모피를 입지 않는 등 윤리적 소비도 도움이 된다. 동물을 위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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