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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펜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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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4일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중도성향 에마뉘엘 마크롱(45) 대통령과 극우성향 국민연합(RN) 마린 르펜(54) 후보가 5년 만에 다시 맞붙는다. 선거 결과는 예측 불허다. 마크롱 대통령이 66%를 득표해 압승했던 2017년과 달리 르펜 후보는 지지율 격차 10%포인트 안쪽으로 마크롱 대통령을 뒤쫓고 있다.
□ 르펜 후보의 선전은 마크롱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 등 외교문제에 매진하는 동안 민생문제에 집중한 덕이다. 르펜 후보는 에너지 부가가치세를 20%에서 5.5%로 인하하고, 30세 미만 국민에게는 소득세 부과를 면제하는 등 유권자들의 피부에 와닿는 공약을 강조했다. 반면 난민ㆍ이민자 등 애국심을 자극하는 이슈에는 발언을 삼가거나 유연하게 대처했다. 반(反)이민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 문제에는 찬성한 게 그 예다. 공공장소에서 이슬람 여성들의 히잡 착용에 벌금을 물리겠다던 르펜 후보는 최근 이 문제를 의회에서 논의할 문제라고 비껴갔다. 프랑스 인구의 8%를 차지하는 무슬림을 의식한 행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그가 이념 정치에서 생활 정치로 중심을 옮기면서 지지자들의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극우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르펜 후보의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현 국민연합 전신인 국민전선(FN)이 11개 도시의 시장을 차지하는 등 약진하자 르펜 후보의 아버지인 장 마리 르펜이 FN을 비난했던 예술가들을 향해 “화덕에 처넣어버릴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반유대주의 논란이 벌어졌다. 나치 독일의 가스실을 연상시키는 발언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딸 르펜이 “정치적 실수이며 FN은 모든 종류의 반유대주의를 강력히 반대한다”며 이를 수습했다. 2018년 애국주의적 느낌을 주는 국민전선의 당명을 국민연합으로 바꾼 것도 딸 르펜이다.
□ 극우 정치의 득세는 이제 흔한 현상이지만 유럽연합(EU)의 중심국인 프랑스에서 극우정당 후보가 대권에 가까워졌다는 점은 의미가 다르다. 반세계화에 동조하는 집토끼들을 위한 ‘정체성 정치’로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실용주의’의 기둥을 세우는 르펜 후보의 노회한 정치력이 절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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