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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사람들이 '독하다 토요일'에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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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0일이었다. 내가 동네 단골 카페에 앉아 그해 읽은 책 제목과 독후감을 정리하고 있는 걸 지켜보던 아내가 "당신이 소설을 그토록 좋아하니 친구들과 함께 모여 소설을 읽는 모임을 하나 만들어보면 어때?"라는 의견을 냈다. 출판기획자인 아내는 예전에 일본 출장을 갔다가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이 국내 소설을 너무 안 읽어서 걱정"이라는 출판 관계자의 말을 듣고 우리라도 한국소설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매달 두 번째 토요일 오후 두 시에 모여 한국소설을 읽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아내는 모임에 걸맞는 이름을 하나 지어보라고 명령했고, 카피라이터 출신이자 공처가인 나는 바로 '독(讀)하다 토요일'이라는 이름을 지어 아내의 결재를 받았다.
2018년 4월 두 번째 토요일 오후 두 시에 서울 대학로의 복합문화공간 '책책'에서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를 읽는 것을 시작으로 '독하다 토요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모임의 규칙은 느슨했다. 내가 미리 정한 6개월치 독서목록에 따라 책을 구입한 회원들은 오후 두 시에 정해진 장소에 모여 책을 묵독하다가 세 시부터 토론을 하는 척하면 되는 것이었다. 모임의 모토가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였으므로 네 시쯤이면 이야기를 멈추고 모두 술집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배명훈, 김언수, 한강, 황정은, 김초엽, 장류진, 김연수, 최진영, 한정연, 편혜영 같은 당대 특급 작가들의 최신작을 만끽할 수 있었고, 아내와 나의 개인적인 인연을 이용해 김탁환, 조선희, 로버트 파우저 교수 같은 작가들을 직접 모시고 북토크도 할 수 있었다. 특히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탄 직후엔 외국인 최초로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7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천재 파우저 교수를 초청해 한·미·일 세 가지 버전의 '채식주의자'를 비교 평가하는 강연을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열었는데 이때는 일반인들도 참여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독하다 토요일'은 제법 인기가 좋아서 어느덧 시즌 7을 달리고 있다. 얼추 40여 권의 한국소설을 읽은 것이다. 요즘 한국의 젊은 소설가들은 정말 소설을 잘 쓴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책을 읽고 술을 마시는 게 너무나 좋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일 년 넘게 온라인으로만 모임을 열어야 했다. 답답하고 힘든 나날이었다.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인 회원 한 분은 견디다 못해 "저는 아무래도 책보다는 책 뒤에 있던 뒤풀이(술자리)를 더 사랑했던 것 같아요"라는 고백을 해오기도 했다.
방역 지침이 변함에 따라 지난주에 1년여 만에 만난 회원들은 최은영의 '밝은 밤' 얘기를 좀 하는 척하다가 성북동의 술집으로 달려가 모두 대취했다. 우리가 책 때문에 모인 건 맞지만 오로지 책만 읽으려고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음이 또 한 번 밝혀졌다. 지금도 '독하다 토요일' 회원 가입을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 "독토에 들어오고 싶어서 대기 중인 분들이 많은데요, 한 번 들어오면 좀처럼 그만두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은 가입이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붙어 있는 이유가 아무래도 책이 아니라 뒤풀이 때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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