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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 총재 구두개입 비웃듯 엔화 추락... ‘완화정책 계속’에 베팅하는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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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에 버금가는 안전자산으로 손꼽히던 엔화 가치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그동안 '엔저는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고집하던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마저 "급격한 엔저는 마이너스"라며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하락세는 연일 계속되고 있다. 시장에선 일본 중앙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 기조를 바꾸기 힘들다는 평가가 많아 엔저 현상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장 초반부터 달러당 127엔대로 하락하더니 오후에는 128엔대까지 떨어졌다. 달러당 엔화가 128엔대가 된 것은 20년 전인 2002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올해 2월 말까지만 해도 달러당 115엔 전후에서 안정됐던 엔화 가치는 지난달 이후 가파르게 떨어졌다.
엔화 가치 급락의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인상에 나서는 등 긴축정책으로 전환하자 한국을 포함한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도 금리를 인상하는 반면, 일본은행은 지금까지도 완화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장금리가 조금이라도 상승할 조짐이면 '국채 무제한 매입'이란 공개시장 조작을 통해 장기금리를 0.25%에 묶어 둔다. 양국 간 금리차가 오래 갈 것으로 보이자 엔저에 베팅하는 투기적 수요까지 몰리고 있다.
급기야 18일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와 스즈키 슌이치 재무장관이 동시에 '급격한 엔저'를 언급하며 구두 개입을 했지만 시장은 주춤하다 곧 다시 하락세로 전환했다. 어차피 구두개입은 하락 속도를 늦춰 보려는 차원일 뿐, 정책 전환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금융완화 기조를 바꾸기 어렵다고 시장이 전망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소비자물가가 다른 나라만큼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 동안 소비자물가 상승률 2%를 목표로 해왔지만 아직도 달성하지 못했다.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4월 상승률이 2%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8%대인 미국이나 4%대인 한국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근본적 원인은 일본 정부의 이자부담이다. 2021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56%에 달한다. 특히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구로다 총재가 합심해 '아베노믹스'를 추진한 10년간 장단기 국채 잔액은 280조 엔(약 2,700조 원)이나 늘었는데, 일본은행이 금융완화를 명목으로 이를 사줬기 때문에 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만약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하고 금리 인상을 용인할 경우 일본 정부의 이자 부담이 급증한다. 재무성은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2025년도의 원리금 부담은 당초 예상보다 3조7,000억 엔(35조6,900억 원)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 전망도 엔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일본은 해외 자산으로 인한 자본수지 흑자 덕에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왔지만,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무역적자 폭이 커지면서 올해 1, 2월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됐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130달러까지 상승할 경우 2022년도 경상수지 적자가 16조 엔을 기록할 것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해외 관광객이 유입되고 이들에 의한 엔화 매입 수요가 발생하지만, 코로나19로 이를 기대할 수도 없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선 향후 달러당 엔화 가치가 130엔까지 떨어지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9일 "시장에서 구로다 발언의 영향력이 크게 떨어졌다"며 "본질적인 흐름을 바꾸려면 금융정책 정상화가 유일한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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