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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페미니스트 정부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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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페미니스트 대통령' 약속했지만
주변인사 정치인 검찰은 개선 없어
민주당이 대신 여성에 부채감 가져야
다음 달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후보 시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을 내놓았다. 곰곰이 따져 보면 후보 시절 그의 공약에서 주목할 만한 성평등 정책도, 페미니스트 정치인다운 면모도 별로 없었지만, 여성들은 환호했다. 민주주의자로서 그가 걸어온 행보가 성평등 가치를 향해서도 열려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에 대한 여성들의 호감은 한때 80%에 근접했던 지지율이나 '문프' '이니' 같은 별칭에서도 나타난다. 지금도 퇴임을 앞둔 대통령으로서 40%에 이르는 지지를 받고 있는 데에는 여성들의 기여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얼마나 지켰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통령은 나름 노력했으나 그의 주변 인사들과 정치인, 관료들을 설득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리더십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고 시스템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은 선언했지만, 자신의 정부를 '페미니스트 정부'로 이끌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스웨덴 정부 홈페이지에 새겨진 '페미니스트 정부'라는 메시지는 여전히 한국의 여성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런 평가는 어쩌면 문 대통령에게 야박한 것일 수도 있다. 2018년 봄, 1987년 헌법 개정과 관련해 성평등 가치를 포함하는 문제를 두고 청와대를 방문했던 몇몇 인사의 말이 기억난다. 다른 관료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테이블에서 열심히 듣고 연필로 메모까지 하던 유일한 분이 문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일종의 상징적 사건처럼 보이는 이 에피소드는 성평등 인식이 낮은 관료들 사이에서 대통령이 느꼈을 법한 고뇌의 일단을 드러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디지털 성폭력이나 스토킹 등 젠더폭력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고 적지 않은 법제도적 성과를 거뒀다. 내각의 여성 비율 등 국가정책 결정과정에서 성별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철회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도 그는 성평등 전담부처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여성운동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민주당 정치인들의 성폭력 사건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군 성폭력 피해자의 죽음 앞에서 사과했지만, 가해자 처벌에는 무력했다. 고위 관료의 성범죄 현장을 전 국민이 지켜보았지만, 오히려 범죄를 추적하고 처벌하려던 이들이 기소되고 사건의 수사를 언급했던 대통령이 궁지에 빠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전 법무차관 김학의 사건이다. 정치인들의 일탈, 관료들의 저항, 법 집행의 책임을 진 검찰의 이반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약속했던 문재인의 리더십에 깊은 생채기를 냈다.
만약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여성가족부를 지금처럼 300명도 안 되는 작은 부서가 아니라 인력과 예산을 갖춘 힘 있는 부서로 키웠다면 또 어땠을까. 여성 관료의 선택을 남성 정치인들의 네트워크에서 분리시켰다면 대통령은 자신의 약속을 더 잘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문 대통령이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은 만큼 빚도 적지 않을 것이다. 20일 후면 출범할, 아직도 여성과 불화하고 있는 새 정부를 지켜보는 여성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문재인이 남긴 유산과 빚은 이제 민주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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