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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과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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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남산 꼭대기에서 한양을 내려다보면 헐벗은 산림으로 암담하고 황폐한 모습이다. 이 도시는 500년 동안 벌목을 해 완전히 헐벗고 황폐해졌다." 100여 년 전 독일 기자 지그프리트 겐테의 눈에 비친 민둥산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까지 더 심해져갔다. 오죽하면 1969년 유엔이 "한국의 산지는 손쓸 방법이 없을 정도"라고 했을까. 다행히 1970년 초부터 전 국민이 동원된 치산녹화사업과 땔감 대체 연료 보급으로 놀랄 속도로 숲이 되돌아왔다. 1982년 세계식량농업기구가 한국을 세계 4대 조림 국가의 하나로 꼽은 건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 이렇게 일군 숲을 산불은 단숨에 황무지로 만든다.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기후 탓으로 반복해 대형산불을 겪는다. 무엇보다 산불 예방이 절실하지만 불이 난 뒤 숲을 어떻게 살릴지도 중요하다. 국내 산림녹화는 오랫동안 성장력이나 임업 생산을 중시한 인공조림 중심이었다. 그 때문에 외래종이나 생태를 고려하지 않은 수종 확대가 심심치 않게 논란을 불렀다.
□ 지난달 삼척, 울진을 휩쓸었던 역대 최장의 산불로 초토화된 숲 복원 논의가 활발하다. 최근 이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정연숙 강원대 교수는 30여 년 전 산불이 난 영동 일대를 조사한 결과 자연적으로 복원된 숲 면적이 인공조림지보다 더 넓다는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생물 활동이 활발한 표층 토양, 유기물 함량도 자연복원지가 우세했다.
□ 불타 버린 산에는 기껏 풀이나 자라고 나무가 크기 어려울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숨어 있던 움싹이 성장해 20, 30년이면 숲의 외형이 돌아온다. 국내 전체 조림지 면적은 1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베어내지 않아 자연적으로 살아난 숲이다. 생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소나무 위주 인공조림을 피해야 한다고 한다. 낙엽활엽수 중심인 생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데다 산불이 날 경우 불을 키운다는 약점도 있다. 그렇다고 송이버섯 채취 등 지역민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다. 임업자원 활용을 고려하면서 자연복원에 방점을 둔 숲 재생 패러다임 전환을 고민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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