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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외쳤다 "장애인 콜택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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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4일 개봉한 영화 '복지식당'은 장애등급을 재심사받으려는 주인공 '재기'의 행정심판 장면으로 시작한다. 법정에 선 재기는 이렇게 말한다. "취직해서 돈도 벌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장애인 콜택시가 필요합니다."
이 대사는 정재익(49) 감독 자신이 직접 등급을 바로잡으려는 행정심판에서 했던 말이기도 하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공동 연출인 서태수 감독과 함께 정 감독을 만났다. 영화는 주인공이자 사고로 장애인이 된 재기의 '재기(역량이나 능력 따위를 모아서 다시 일어섬)'를 그린다. 보호자라고는 홀로 아들을 키우는 친척 누나 하나가 전부인 재기는 장애인이 된 후로도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한다.
의지를 갖고 살아보려고 하지만 5급 판정을 받은 재기는 장애인 등급제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다. 정 감독은 "영화의 80% 정도가 고스란히 내 얘기"라면서 "직접 겪은 답답한 일들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라고 전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이 됐다.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인 음성 꽃동네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37세의 청년은 갑작스런 교통사고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사고 후유증으로 언어장애까지 얻은 그를 주변에서는 중증장애인으로 봤지만 정작 경증에 속하는 '5급 장애인(지체)' 판정이 내려졌다.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데 휠체어 할인은커녕 활동 보조 서비스도, 장애인 콜택시도 부를 수 없는 숫자였다. 무엇보다 당장 일해서 먹고살 일이 막막했다.
"일을 구하려고 보니 중증장애인을 쓰려는 곳에선 경증이라 안 된다 하고, 다른 일자리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니 채용은 무리라고 하더군요. 장애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헤맬 수밖에요."
요새 말이 나오는 '이동권'이 가장 큰 문제였다. 휠체어를 타야만 이동할 수 있는 그는 일반 택시를 이용하기 어렵지만 장애인 콜택시는 1급 또는 2급 장애인만 부를 수 있었다. 정 감독은 "어머니가 위독해 병원에 가려니 5급이라 장애인 콜택시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라면서 "주변의 2급 장애인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그제야 함께 갔다"라고 경험을 전했다. 답답한 마음에 청와대 국민청원을 비롯해 온라인에 글도 여러 차례 올려 봤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2019년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경증장애인도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콜택시 대수는 늘어나지 않았다.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이 등급제 폐지 이후로도 크게 나아지지 않은 이유다. 등급제가 폐지된 상황에서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장애인 콜택시가 오지 않아 정 감독의 이동이 늦어져 일정이 지연되는 경우도 잦았다. 서 감독은 "장애인이라면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만 현장의 비장애인 배우나 스태프는 다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라면서 "촬영을 20일간 했는데 거의 매일같이 겪는 일이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정 감독은 "장애인 콜택시가 언제 올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라면서 "한번은 제주 서귀포 지역에서 시사회를 갔다가 3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라고 귀띔했다.
2018년 장애인 영화제작 워크숍에서 두 감독이 만나면서 영화 '복지식당'은 시작됐다. 한창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헤매던 시절이었다고 정 감독은 회상했다. 그러다 장애인 친구를 따라간 그 워크숍에서 시나리오를 처음으로 써 봤다. 서 감독은 "처음에는 분노로 가득한 다소 거친 글이었지만 비장애인은 모르는 장애인의 삶의 경험과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라고 전했다.
정 감독의 시나리오를 본 서 감독이 영화 제작을 제안하면서 첫걸음을 뗐지만 '감독 데뷔'는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이들의 영화가 완성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무관심이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 정 감독에게는 '네가 뭔데 장애인이 영화를 찍나'라는 냉소가 쏟아졌고, 비장애인인 서 감독에게는 '사기꾼'이라는 눈총이 따라붙었다. 서 감독은 "제작비를 내가 사적으로 쓰고 영화는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정 감독은 "이런 말을 듣고 나니 '죽어도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오기가 들었다"고 전했다.
정 감독뿐 아니라 '복지식당'은 장애인 스태프가 절반가량 참여한 공동체 영화이기도 하다. 조연이나 단역으로 장애인 연기자가 등장할뿐더러 조감독이나 연출부에도 장애인이 있었다. 소품이나 의상, 미술팀이 따로 없어서 영화 속 재기가 사는 집은 정 감독의 지인이 사는 집을 빌려 그대로 촬영했다. 서 감독은 "실제 장애인의 집이라 벽이나 기둥 등에 휠체어가 할퀸 자국이 보인다"라고 전했다.
영화 개봉을 앞둔 두 감독의 목표를 물었다. 서 감독은 "정 감독이 영화인으로 '자립'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고 했다. 소망대로 두 감독은 장애인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차기작도 준비하고 있다. 정 감독은 "장애인으로 살다 보니 비장애인이 장애의 세계에 대해 너무 모르더라"면서 "이런 부분을 찾고 발굴해서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애인들도 할 말이 많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다.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고 웃으면서 덧붙였다. 영화에 '나쁜 장애인'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의 2020 통계로 보는 장애인의 삶을 보면 장애인 취업률은 34.9%다. 전체 인구 취업률(60.7%)의 절반 수준이다. 이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이동권이다. 장애인의 취업률과 교육수준은 이동권과 맞닿아 있다. 집에서 나갈 수 있어야 공부든 일이든 할 수 있다.
정 감독은 "집에서 지내는 장애인들은 밖에 나가질 못해서 실제로 국내 장애인 수가 몇 명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라고 꼬집었다. 국내 등록 장애인 수는 260만 명이지만 일부 장애인 단체에서는 미등록 장애인까지 합치면 400만 명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정 감독은 "이동권은 장애인의 삶 자체"라면서 "더 많은 장애인이 밖으로 나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삶을 모른다"라고 했다. 모르기에 누군가는 쉽게 말하고 비판한다.
정 감독은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비장애인 배우들은 '장애인 감독과는 어떻게 일해야 하나' 고민하고 생각해야 했다. 그런 생각 하나하나가 모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접점'이 늘어날수록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되리란 작지만 큰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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