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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찔이의 새로운 도전, 고추 대신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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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가 격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여행하는 과학쌤’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이은경 고양일고 교사가 쉽고 재미있게 전해드립니다.
매운 음식 열풍에 소위 맵찔이(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은 떡볶이조차 먹기 힘든 세상이다. 초등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팔던 설탕 가득한 떡볶이가 그리운데 달달한 떡볶이 국물은 찾을 길이 묘연하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유행을 반영하여 매운 소스를 베이스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순한 맛으로 주문을 해도 기본적인 소스의 바탕이 되는 매콤함 때문에 맵찔이들은 마음껏 식도락을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매운맛은 통각의 일종이기 때문에 매운 음식을 먹을 때는 실질적인 고통이 따른다. 고추의 캡사이신, 고추냉이의 이소티오시아네이트, 마늘의 알리신 등은 TRP 통로라는 세포막의 이온 통로를 자극한다. 현재까지 수십 종류의 TRP 통로들이 알려져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칼슘이온 등 양이온을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어떤 자극에 의해 세포막의 TRP 통로가 열리게 되면 세포 안팎으로 양이온이 이동하면서 막전위를 변화시키거나 세포 내 물질들의 반응을 유도한다.
TRP 통로 중 TRPV1은 캡사이신에 반응하는 수용체로 알려져 있다. 신경세포에 존재하는 TRPV1에 캡사이신이 결합하면 구조가 틀어지면서 이온이 통과할 수 있게끔 통로가 열린다. TRPV1 통로를 통해 칼슘이온이 신경세포 안으로 들어오면 세포 내부가 일시적으로 양극을 띠면서 자극이 전달되기 시작한다. TRPV1은 캡사이신뿐만 아니라 섭씨 43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반응한다. 고추의 매운맛이 타는 듯한 느낌과 열감을 주는 것은 캡사이신 수용체와 열 수용체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피자에 흔히 뿌려 먹는 매콤한 소스의 이름이 핫(hot)소스인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캡사이신에 오래 노출되면 세포 내의 칼슘이온을 매개로 하는 일련의 반응을 거쳐 TRPV1의 민감도가 감소해 통증을 덜 느끼게 된다. 매운 음식을 계속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더 매운 음식도 괜찮게 느껴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실제로 캡사이신이 포함된 약제를 국소 부위에 도포하여 통증을 치료하는 의약품도 개발되어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매운 음식을 유난히 먹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여러 원인에 의해 상대적으로 TRPV1의 민감도가 높은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고추가 들어 있는 음식을 못 먹는 사람이라도 마라 소스에 대한 반응은 다를 수 있다. 중국의 향신료 중 하나인 마라에는 초피 등이 들어 있는데, 초피나무 속 식물에 포함된 산쇼올은 캡사이신의 타는 듯한 통증과는 달리 저릿저릿하고 얼얼한 느낌을 준다. 산쇼올은 신경세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칼륨이온의 통로를 억제해 마취제와 비슷한 마비 효과를 낸다. 또한 기계적인 자극을 주로 전달하는 신경세포를 활성화시켜 진동하는 것처럼 기계적인 촉각 자극이 지속되도록 한다. 마라탕을 먹었을 때의 얼얼하고 저릿한 느낌은 이 때문이다.
매운 음식으로 통칭해 부르지만 고추와 마라가 자극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마라탕은 먹기 힘들 수 있으며, 반대의 상황도 가능하다. 매운 음식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갈 곳을 잃은 맵찔이라면 고추를 덜어낸 마라 소스를 시도해보자. 자신만의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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