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이 많으면

입력
2022.04.16 04:3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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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은 전문가다. 사공은 배가 다른 데로 흐르지 않도록 쉬지 않고 노 젓는 부지런함이 있을뿐더러, 몸에 익힌 숙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흔히 노군, 뱃사람 등으로 편하게 불리기도 하지만, 사공은 엄연히 배를 부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 인력이다. 예전 서울에서 중요한 나루가 있던 한강, 용산, 마포, 현호, 서강 다섯 마을을 오강이라 불렀는데, '오강 사공의 닻줄 감듯'이라 하면 무엇을 능숙하게 둘둘 감아 동이는 기술을 말한다. 이리저리 말을 잘 둘러치는 이를 두고 '사공 배 둘러대듯'이라 하는데, 이 또한 사공의 능숙함을 보이는 말이다. 하물며 여럿의 목숨을 담보하며 배를 부리는 일인데, 사공이 아무나 하는 그런 일이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에서 '사공이 많다'고 하면 왜 바로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부정적인 상황이 먼저 떠오르는 것일까? '목수가 많으면 기둥이 기울어진다', '상좌가 많으면 가마솥을 깨뜨린다'에서도 같은 의문이 든다. 목수는 나무를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며 실력 없는 목수의 행태를 비웃는 속담도 있지만, 솜씨 좋은 목수, 큰 건축물을 잘 짓는 목수는 특별히 '대목'이라 부르며 존중한다. '상좌'도 스승의 대를 이을 여러 승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이다. 목수도 상좌도 분명 많은 경험에 실력도 검증된 이들인데, 이들의 합이 부정적인 뜻의 속담으로 남은 까닭이 무엇일까?

하기는 유럽에도 '요리사가 많으면 수프를 망친다'가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일은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나타날 일인가 보다. 여럿의 사공, 목수, 상좌, 요리사 등을 보는 이 속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다양한 주장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결정할 기준이 제각각임을 염려하는 것이다. 사회 모순을 풍자한 속담은 있는 그대로 해석되지 않는다. 수직 구조였던 전통 사회는 각 분야의 전문가 여럿이 함께 소통하면서 합의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그러할 때 우리 선조들이 말하고자 한 것은, 뚜렷한 책임자 없이 각자의 경험에 따라 간섭하면 원뜻을 그르친다는 것이다. '목수가 해금 통을 부순다'처럼, 비록 목재를 다루는 전문가일지라도 경험에 기대서 섣불리 덤비면 선의를 이루지 못한다. 오늘날 이 땅에는 그간의 교육열로 빚어낸 '도사공'과 '대목'이 무수히 많다. 속담 하나를 다시 해석하면서, 사공이 많을 때를 미리 염려한 우리 선조들의 혜안을 배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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