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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자격

입력
2022.04.16 00:00
22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2016년 12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한 어린이가 촛불을 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2016년 12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한 어린이가 촛불을 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봄의 금요일 아침. 사무실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여느 때와 달리 잡담을 나누거나 들락날락하는 사람이 없이, 모두 제자리에서 입을 꾹 닫고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우리의 관심은 각자의 화면 구석에 띄워 놓은 헌법재판소 선고 중계에 쏠려 있었다.

11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왔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키보드 소리조차 멈췄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몇몇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누구도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뿌듯함이 담긴 눈빛만을 교환했을 뿐. 이날 점심 시간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길었다.

5년이 지났지만 이날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내게는 생애 가장 강렬한 정치적 경험이었다. 사안의 파격성 때문이 아니라, 거리로 나섰던 전 해 겨울 밤들과 직접 연결된 결과라는 점에서 그러했다. 당시 마주친 시위대의 많은 수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삼삼오오 나온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끌려 나선 것이었다. 건조하게 적는다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분노' 정도겠지만, 그보다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세월호 침몰 후 느꼈던 무력감과 분노, 부패하는 국가를 보며 겪은 절망.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어떤 집단을 대변하고자 모인 것도 아닌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은 맥락을 공유하고 있었다. 당시 탄핵 의사를 묻는 설문조사는 늘 동의 의견이 80%를 넘겼는데, 이는 정치 성향과 별개로 권력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데 대다수가 동의했다는 의미였다. 민주 사회의 시민이라는 점에 긍지를 가지라고 배우며 자라온 내게 이 일련의 과정은 큰 자부심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이 박근혜씨를 사면했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모욕감이었다. 그는 주어진 형량의 절반도 못 채운 상태였다. 노환을 고려한 도의적 사면이라고 했으나, 박근혜씨는 개인의 좀도둑질로 구속된 것이 아니라 임기 중 국가를 위협한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갇힌 것이었다. 그의 자격 박탈을 요구한 것은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었다. 그럼에도 겨우 한 사람이 이 문제를, 조금의 설득도 없이 이토록 빨리 결정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윤석열 당선인이 박근혜씨를 찾아 '과거의 일'에 대한 사과를 건넸다. 박씨는 '담담하게'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박씨는 아직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사과한 이력이 없는데, 이들의 사이에서는 이 일이 벌써 넘어서야 할 과거가 되어 버렸다.

안 웃긴 농담 같은 이 상황을 보며, 허탈감을 앞서 드는 걱정은 이 결론이 이후 시민사회에 끼칠 악영향에 대한 것이다. '거악'이라 명명해 타도했던 것이 채 한 정권을 넘기지 못하고 그린 듯이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앞으로 누가 분노를 가다듬어 나설 것인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당선인은 지금 어디에 사과하고 있는가. 자격도 없고 방향도 틀렸다.

6년 전 겨울의 밤거리가, 5년 전 봄의 사무실 풍경이 스쳐간다. 벚꽃이 흐드러지고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따뜻해지는데, 마음도 기분도 다시 6년 전의 겨울밤으로 돌아간 듯하다.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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