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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여기가 어디지”… 제주 고사리철 ‘길 잃음 주의보’

입력
2022.04.17 10:00
수정
2022.04.17 17: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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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헤매다 길 잃는 사고 빈번
드론에 풍력발전기 식별번호 등
수색작업에 소방·경찰도 분주

제주 고사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주 고사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14일 오후 1시쯤 제주 제주시 구좌읍 다랑쉬 오름 근처에서 60대 여성 A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119에 구조 요청을 했다. A씨는 일행과 함께 오름 근처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다 뒤늦게 자신이 일행과 떨어져 고립된 것을 알았다. 고사리을 찾아 땅만 보며 걷다가 길을 잃은 것. 신고를 접수한 제주자치경찰단은 현장에 도착한 뒤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주변 지형지물을 확인해 보라고 전했다. “주변에 컨테이너 박스가 보인다”는 A씨의 말에 드론을 띄워 10분 만에 신고자 위치를 파악했다. 이어 경찰관이 부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A씨를 나오도록 유도해 안전하게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A씨의 사례에서처럼 제주에선 매년 4월이면 ‘고사리철 길 잃음 사고'가 반복된다. 봄 고사리를 채취하기 위해 무리하게 들판이나 숲속을 헤매다 갈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제주자치경찰이 드론을 활용해 길 잃은 고사리 채취객 수색을 하고 있다. 제주자치경찰단 제공

제주자치경찰이 드론을 활용해 길 잃은 고사리 채취객 수색을 하고 있다. 제주자치경찰단 제공


17일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도내에서 발생한 길 잃음 안전사고는 총 246건으로 집계됐다. 유형별로는 고사리 채취가 111건으로 가장 많고 등산 및 오름 탐방 77건, 올레길 및 둘레길 탐방 58건 순으로 발생했다. 월별로는 4월과 5월이 136건(55.3%)으로 최다를 기록했는데 이 중 105건이 고사리 채취 중 길을 잃은 경우다. 발생 지역 또한 고사리를 주로 채취하는 동부 읍·면 지역이 154건으로 가장 빈번했다. 길 잃음 사고로 발생한 인명피해는 사망 1명, 부상 18명에 달했다. 2020년에는 70대 남성이 고사리를 캐다 연락이 끊겨 실종돼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고사리 채취 관련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고사리가 인적이 드물고 나무와 풀이 무성한 중산간 목장과 오름, 곶자왈 등지에서 많이 자라기 때문이다. 평소 인적이 드물던 제주 중산간 일대 도로가 봄만 되면 이른 새벽부터 주차장으로 변하는 것도 고사리 채취객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풍경이 비슷비슷한 들판과 숲에서 땅바닥만 보며 고사리 꺾기에 신경을 쓰다간 쉽게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소방당국과 경찰도 봄만 되면 실종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최근에는 실종자 수색에 드론을 투입하고, 길 잃음 사고가 빈번한 구좌읍 지역에는 90m 높이 풍력발전기 기둥에 식별번호를 써놨다. 길을 잃었을 때 이 번호를 보고 신고하면 119가 신속하게 위치를 확인, 구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제주 고사리는 예로부터 임금에게 진상을 올릴 정도로 쫄깃하고 뛰어난 맛과 향기를 자랑한다. 잘 말린 제주 고사리는 같은 무게의 소고기보다 더 비싸게 팔리기 때문에 최근에는 다른 지역에서 아예 고사리를 캐기 위해 제주를 찾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소방당국은 “고사리를 꺾으러 나갈 때는 반드시 일행을 동반하고 휴대폰, 호루라기 등 연락 가능한 장비를 휴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한 번씩 수풀 속에서 일어나 자신의 위치를 계속 확인하면서 움직여야 한다"며 "길을 잃으면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즉시 119나 112로 구조 요청을 해야 신속하게 발견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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