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함께 아파하는 예술

입력
2022.04.14 20:00
25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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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상황 속에서 예술이 할 일은 무엇일까. 예술의 뿌리는 자연이다. 예술가들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인간과 자연, 예술과 자연의 공존을 늘 꿈꿔 왔다. 자연을 닮은 예술은 인간끼리만 더 나은 삶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 대신 순환과 순응의 미덕으로 생태계 모두와 관계 맺는 삶을 추구해 왔다.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도모하며 인간과 지구를 연결할 수 있는 적극적 행동을 촉발시켜 온 것이다. 이렇듯 예술을 통해 생태적 사고의 전환을 이끌고 자연을 돌보는 삶으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이 시대 예술의 절실한 의무라 하겠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자연에 대한 투쟁과 승리의 일대기였다. 인간은 자연의 정복자이자 파괴자였고, 문명은 자연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도구와 기술을 이용하며 생명의 뿌리인 자연을 함부로 성급히 훼손시켰다. 휴머니즘은 자연을 소외시키는 인간중심주의와 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스스로 서식지인 자연을 서슴없이 파괴했고 그저 지배와 이용 수단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러자 인간은 자연스레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산불과 홍수, 태풍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감염병은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침범해온 인간문명을 향한 준엄한 경고와 다름없다.

사람들은 마음 아프고 끔찍한 광경을 마주하기를 기피한다. 그보다는 즐거운 오락이나 편안한 위로를 선호하기 마련인데, 때론 예술도 이를 적극 동조해왔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제와 같은 일상을 반복했고, 심각한 위기를 감지하더라도 직접적 관련이 없다며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현재를 살기 위해 미래를 죽여 오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예술은 미래를 위한 경고이며, 일종의 조기경보 시스템이 되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의 외침은 재난의 시기에 더 큰 울림으로 공명될 필요가 있다.

최첨단의 진화와 발전을 성취한 인간문명은 현대인의 더 쾌적한 삶을 위해 자원과 에너지를 물 쓰듯이 소모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에 남긴 인류의 흔적은 황폐화된 숲과 산, 더럽혀진 공기, 오염된 물 등 치명적 희생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예술이 예술을 하느라 지구에 남긴 상흔들도 도처에 난무하고 있다. 예술가의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이나 온실가스, 에너지의 무분별한 소비가 관행처럼 굳어졌기 때문이다. 인간문명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화려함과 편의성이 곧 자연의 고통임을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생태의 순환과 연결을 회복시키는 다양한 예술적 사건을 발굴하길 갈망한다. 재난의 시대, 지구의 아픔에 공감하고 전 지구적 위기를 깨닫는 생태적 감각을 북돋기 위해선, 지탱 가능한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낼 예술의 역할을 사무치게 일깨워야 할 것이다. 북극 보호 구역 지정을 위한 음악가들의 투쟁, 해양 오염의 주범인 섬유 산업 폐기물을 소재로 한 미술 작업, 멸종되는 생태종과 함께 사라져가는 자연의 소리를 담으려는 사운드 아티스트, 방사능 폐기물의 영구 처분장을 모티프로 한 국악 창작극, 후쿠시마 방사능에 오염된 피아노의 자연 복원 작업 등 자연 파괴와 오염의 심각성을 예술가들은 몸소 처절하게 소리치고 있다. 기존의 예술이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을 마냥 유미적으로 표현했다면, 이 시대의 예술은 불편한 죄책감을 불협의 음정 같은 예술의 방법으로 각성시키기도 한다.

비록 예술이 혹은 예술교육이 이 시대의 재난을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해도,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유의미한 실천을 이끌어 내리란 믿음을 잃지 않고 싶다. 예술적 영감은 때로 과학자의 분석이나 정치인의 선동, 언론의 보도보다 큰 울림을 일으키지 않던가. 한 사람의 행동과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예술은 지니고 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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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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