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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매운 맛’ 가고 힐링 ‘순한 맛’ 드라마 오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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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나 어디서든 시끄러웠던 마음들 다 끄고 오롯이 쉬는 시간을 갖고 싶을 때 (드라마를) 보시면 좋겠어요."
지난 8일 JTBC '나의 해방일지'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김지원
일상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이들을 위로하는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을 찾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3년 차를 맞은 올해 봄·여름에는 '힐링'이 주류다. 누적된 스트레스를 더 쌓는 '매운 맛' 드라마보다 소소한 이야기지만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순한 맛' 드라마가 연이어 방송된다.
지난 9일 첫 방송된 tvN '우리들의 블루스', JTBC '나의 해방일지'가 대표적이다. 두 작품 모두 유명 작가가 집필했다. '블루스'는 '디어 마이 프렌즈'의 노희경 작가, '해방일지'는 '나의 아저씨'를 쓴 박해영 작가의 작품이다. 전작에서 두 차례 이상 호흡을 맞춘 김규태 감독('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김석윤 감독('올드미스 다이어리', '청담동 살아요')이 각각 함께했다. 이병헌 신민아 차승원 이정은 한지민 김우빈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화제를 모은 '블루스'는 1회 시청률 7.3%(닐슨코리아), 김지원 손석구를 내세운 '해방일지'는 2.9%를 기록했다.
KBS는 출생의 비밀·기억상실 등 개연성 없는 전개의 '막장'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후속으로 지난 2일 가족극 '현재는 아름다워'를 선보였다. 매운 맛은 덜어내고 훈훈함을 더했다. 유쾌한 대가족의 유일한 과제는 삼형제(오민석 윤시윤 서범준) 결혼시키기다. 결혼 상대를 먼저 데려오는 사람에게 아파트를 주겠다는 제안 하나로 극은 전개된다.
5월에는 KT의 OTT 서비스 시즌과 올레tv에서 곽도원 윤두준의 생활밀착형 휴먼 코믹 드라마 '구필수는 없다'가 공개된다. 넷플릭스는 웹툰 원작의 판타지 뮤직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로 순수한 감성의 감동을 선사할 계획이다. 모두 자극적이고 과한 설정보다 공감과 위로, 이른바 힐링을 내세운다.
평범한 이들의 일상에 주목한 '힐링' 드라마
각 작품은 주인공의 직업과 성격도, 극 중 배경도 모두 다르지만 세 가지 특징을 공유한다. ①특별할 것 없는 주인공이 ②일상 속 공감할 수 있는 갈등을 겪고 ③그 과정에서 로맨스는 일부일 뿐, 삶을 전면에 내세운다.
주인공은 주변에서 볼 법한 인물이다. '현재는 아름다워'의 막내 커플인 공시생 이수재(서범준)와 취준생 나유나(최예빈)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도중 만난 사이다. 아파트를 건 어른들의 결혼 내기는 이들에게 도구에 불과하다. 각자 승부욕, 경제적 자유를 향해 달린다. '구필수는 없다'에서 중년 구필수(곽도원)는 인생 2막을 꿈꾸는 치킨가게 사장이고, 정석(윤두준)은 창업 아이템은 있지만 돈이 없는 청년 사업가다. 이들은 모두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가 본인과 동일시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
드라마 속 주된 갈등은 큰 사건사고가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곧 갈등이다. '해방일지'에서 경기도의 끝, 산포시에 사는 염씨 삼남매의 하루는 출근시간 화장실 쟁탈전으로 시작한다. 통근에 지친 첫째 기정(이엘)은 “내가 죽으면 서울로 출퇴근하다가 죽은 줄 알아"라고 하소연한다. 분명 밝을 때 퇴근했는데 집에 오면 밤이 되는 삶을 사는 경기도민의 애환을 담았다. 지겨운 일상이 이들에게는 갈등 요소이고 해결해야 할 대상이다.
최근 종영한 SBS '사내맞선', JTBC '기상청 사람들'이 전격 로맨스였다면 순한 맛 드라마에서 로맨스는 극을 구성하는 요소에 불과하다. '블루스'는 한평생 제주에 살거나 육지에서 제주로 돌아온 이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20회에 걸친 옴니버스의 포문을 여는 한수(차승원)와 은희(이정은) 에피소드도 첫사랑을 매개로 하지만 결국 쓰디쓴 인생을 사는 중년이 청춘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오일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는 은희는 제주로 돌아온 동창 한수에게 "네가 엉망진창 망가져서 나타났으면 내 청춘이 망가진 것 같아서 슬펐을 것 같다"고 말한다. 얼핏 번듯해 보이지만 딸의 골프 유학비를 대느라 돈까지 빌려가며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한수는 은희의 말에 쓴웃음을 짓는다.
상처를 희망으로..."모든 삶에 대한 응원 담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노희경 작가), "행복을 꿈꾸는 어른들의 성장드라마"(김석윤 감독). 지난 7일과 8일 '블루스'와 '해방일지' 제작발표회에서 이들이 전한 메시지는 시청자에게 가닿았을까.
각 드라마는 극 초반을 배경 설명에 할애했다. 잔잔한 분위기에서 다소 무거운 메시지를 전했다. '해방일지'는 염미정(김지원)이 직장에서 대인관계를 어려워하는 모습을 부각했다. 서울을 둘러싼 '계란 흰자' 같은 산포시는 이들이 사회에서 느끼는 위치나 소외감이기도 하다.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라는 미정의 말에 시청자들은 "딱 나 같다", “특별히 잘하지도, 사교적이지도 않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런데 사회는 저런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하죠” 등 반응을 보이며 인물에 공감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를 통해 "자기 상처의 근원을 찾아보고 그 안에서 사회의 문제가 있다면 본질은 뭔지,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남은 회차 동안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휴먼드라마라고 하는 장르적으로 돌고 도는 정통 드라마 문법을 넘어서는 지점을 찾아야 하고 개연성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며 "'블루스'가 제주라는 공간적 배경을 설정하면서 초반에는 그들의 일상이지만 우리네 일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평론가는 "'현재는 아름다워'에서 결혼, 출산을 기피하는 세대의 이야기를 담는다면 이들이 단순히 집만 없어 결혼을 안 하는 건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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