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일 많은데…" 검수완박 추진에 마냥 웃지 못하는 경찰

입력
2022.04.14 04:4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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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업무 가중 우려… 내부갈등 비화 소지도
일선에선 "인력 확충 등 사전 준비부터 해야"
고위급도 "제도 바뀐 지 1년 만에 또" 떨떠름

1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사가 보이고 있다. 뉴시스

1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사가 보이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추진을 바라보는 경찰의 속내가 복잡하다. 조직의 숙원인 '수사권 독립'이 완결될 수 있는 호재지만, 막상 실현될 경우 일선 업무 증가 등 혼란이 불가피해 보여서다.

"경찰이 6대 범죄 수사까지 맡게 되면…"

1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민주당이 4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며 당론으로 채택한 법안은 검찰의 1차 수사 기능을 전부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에 남긴 6대 중대범죄(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대형참사, 방위사업) 수사권을 경찰에 마저 이관, 경찰이 사실상 모든 수사를 전담하게 하자는 것이다.

경찰 내부에선 민주당 계획을 마냥 반기진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경찰 권한이 확대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수사 인력 부족이나 중대범죄 수사 전문성 미비 등 현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경찰관은 "(검수완박 추진은) 경찰 조직 입장에선 긍정적인 일이고 직원들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라며 "다만 검찰 수사권 폐지가 경찰 수사업무 가중으로 이어지는 구조라 현장에선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장 수사 담당 경찰관 사이에선 강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서울 지역 경찰서 소속 수사관은 "지금도 처리할 사건이 많아 허덕이는데 검수완박 이후엔 어떨지 불보듯 뻔하다"며 "인력 확충이 없으면 현장엔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난해부터 경찰 일선에선 수사나 고소·고발 사건을 담당하는 부서를 기피하는 문화가 확산돼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경찰 내부망 폴넷에도 준비 없는 검수완박 단행은 경찰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취지의 글이 잇따라 게시되고 있다. 한 작성자는 "수사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절대 좋은 수사가 될 수 없다"며 "수사관 개인에게 독촉하는 것으로 모든 노력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조직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적었다. 또 다른 작성자는 "진정한 검수완박이 되려면 경찰은 최소 10년 전부터 경찰학교에 전담과를 만들어 수사경찰을 양성해야 했다"며 "최근 몇 년 동안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나"라고 반문했다.

"현행 수사권 조정 안착이 우선" 반론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전경. 경찰청 제공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전경. 경찰청 제공

일각에선 검수완박이 현실화하면 경찰 내부 갈등이 깊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경찰 노조 격인 전국경찰직장협의회(경찰직협)는 현장의 불만과 우려를 지휘부에 전달하기 위한 성명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관기 경찰직협 대표는 "수사권 조정 이후 현장에 대한 인센티브 등 개선책을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라며 "검수완박에 따른 지휘부의 대비책이 무엇인지 따져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수완박을 달갑잖게 보는 시선은 경찰 윗선에도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제도가 시행된 지 겨우 1년을 넘겨 안착이 필요한 상황인데, 정치권 주도로 경찰에 새로운 과제가 던져지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제도가 바뀌면 그에 맞춰 조직을 정비하면 된다"면서도 "새로운 제도(검경 수사권 조정)를 정착시키고자 미비점을 보완해가는 시기에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지니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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