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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동안 잊혔던… 뉴욕 할렘의 ‘검은 문화혁명’ [몰아보기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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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플러스 바로 보기 | 1부작 | 12세 이상
1969년은 대중음악 팬들에게 특별한 해다. 그해 8월 미국 뉴욕 남동부 우드스톡에서 전례 없는 록 축제가 열렸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이었다. 지미 핸드릭스와 존 바에즈, 재니스 조플린 등 당대 스타들이 무대에 올랐고, 50만 관객이 진흙 위에서 열광했다. 대중음악의 결정적인 순간을 되돌아볼 때마다 소환되는 행사가 됐다.
엇비슷한 음악 축제가 우드스톡 페스티벌보다 한 달 앞서 뉴욕 할렘의 마운트 모리스 공원에서 열렸다. 할렘 문화 축제로 60만 관객이 몰렸다. 우드스톡은 역사가 됐으나 흑인들이 주도한 할렘 문화 축제는 곧바로 잊혔다. 디즈니플러스 다큐멘터리 ‘축제의 여름 (… 혹은 중계될 수 없는 혁명)'은 시간에 묻혔던, 뜨거웠던 시간을 화면에 복원했다.
축제는 6주 동안 펼쳐졌다. 무대를 빛낸 스타 역시 주로 흑인이었다. 스티비 원더와 B. B. 킹, 니나 시몬, 밴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밴드 템테이션스의 리드 싱어 데이비드 러핀 등이 무대에 올랐다. 주로 솔 음악의 대가들이었다.
축제는 기획 단계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음악인들의 출연료는 만만치 않았으나 무료 공연이었고 후원은 적었다. 어렵게 개최한 축제는 우드스톡처럼 예상을 뛰어넘은 관객들이 몰렸다. 할렘 주요 거주자인 흑인이 대부분이었다. 흑인 음악, 미국 흑인 문화의 전환점이 됐다.
1960년대는 흑인들에겐 유난히 물기 어린 시기였다.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맬컴 엑스 등 민권 운동을 이끌던 지도자들이 잇따라 흉탄에 쓰러졌다. 많은 흑인들이 베트남전쟁 최전선에 내몰리고도 전공은 가려졌다. 눈물은 폭력을 잉태했다. 뉴욕은 해체 불가능한 시한폭탄이 설치된 듯 위태로웠다.
할렘 문화 축제는 눈물과 한숨과 분노와 희망과 희열이 녹아든 음악의 용광로였다. 뉴욕 흑인들은 마운트 모리스 공원에서 마음의 위로를 찾았고, 새 정체성을 모색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당시 관객과 음악인 등의 회고와 평가를 교차시키며 영혼(Soul)이 충만했던 여름을 되새긴다.
다큐멘터리는 공연실황에만 머물지 않는다. 축제 현장 안팎을 보여주며 당대상을 전한다. 축제가 한창 열리고 있을 때 아폴로 11호가 인류 역사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다. 미국 사회 전반이 과학의 경이에 들썩인다. 하지만 화면 속 흑인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인간이 굳이 달까지 갈 필요가 있었냐고 비판을 쏟아낸다. 빈곤에 시달려 약물에 기대다 비참한 최후를 맞곤 하는 대다수 흑인을 외면한 과학의 승리가 무슨 의미 있냐는 지적이다. 흑백분리로 고통 받던 흑인들의 처지를 돌아보기도 한다.
할렘 문화 축제는 40시간 분량으로 촬영됐다. 관계자들은 우드스톡 페스티벌처럼 영상물이 널리 알려지길 기대했으나 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지하창고에 놓인 채 5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2016년이 되어서야 다큐멘터리화가 본격 논의됐다. 아미르 톰슨 감독의 첫 연출작으로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하며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제95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장편다큐멘터리상 트로피를 안았다. 몇몇 장면은 음질이 조악하다. 니나 시몬의 사자후 같은 노래만으로도 오래 기억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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