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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질 으뜸 '죽방멸치' 550년 지킨 전통의 힘으로 세계농업유산 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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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청산면과 삼동면을 잇는 청산교. 다리 밑으로 펼쳐진 지족해협의 물살 세기는 전국에서 세 손가락에 안에 꼽힐 정도로 빠르다. 빠른 물살에 시선을 뺏길라치면, 은빛바다 곳곳에 세워진 나무 기둥이 눈앞에 펼쳐진다. 원시어업 형태인 '죽방렴'이 550년 넘게 맥을 이어온 현장이다. 이곳에서 잡히는 어류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멸치. 지족해협 23개 어장에서 죽방렴 방식으로 잡힌 멸치가 지역특산물 중 으뜸으로 꼽히는 ‘죽방멸치’다.
‘대나무 어사리’로 불리는 죽방렴은 소형 정치망(어구를 일정한 장소에 일정기간 부설해 두고 어획하는 방식)의 한 종류다.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 300여 개를 'V자' 모양으로 갯벌에 박고 말목과 말목 사이를 대나무 발로 엮어서 울타리를 만든다. 썰물 때 조류를 따라 원형 모양의 발통에 멸치가 흘러 들어오면 밀물 때 쐐발(말목과 발통 사이의 문까래)이 닫혀, 빠져나가지 못한 멸치를 뜰채로 잡는 방식이다. 1469년 조선 예종 원년 편찬된 ‘경상도 속찬지리지’에는 방렴에서 어류가 잡힌다고 기록돼 있는데, 전문가들은 여기서 가리키는 방렴이 지금의 죽방렴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지족해협의 물살은 시속 13~15km에 이를 정도로 빠르다. 조수간만의 차도 최대3.6m 정도로, 물살에 적응하기 위한 멸치들은 운동량이 많아 육질이 우수하다. 발통에 갇힌 멸치는 고운 망의 뜰채로 걷어올린다. 멸치 몸통에 가급적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서다. 멸치는 성질이 급해 잡히면 5~10분 안에 죽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간에 삶아야 최상의 건멸치를 생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족마을에서 죽방멸치를 생산하는 어장주들은 인근에 멸치를 삶고 건조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게 25년째 죽방렴 방식으로 멸치잡이를 이어온 박대규 죽방렴자율관리공동체위원장의 설명이다. 육질뿐 아니라 기름기도 적어 비린내가 많이 나지 않는 게 죽방멸치의 특징이다.
지난해 남해의 멸치 생산량은 8,146톤으로, 19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중 죽방멸치는 186톤이 생산돼, 9억3,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남해군 멸치 전체 생산량에서 죽방멸치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는 않다. 하지만 소량생산은 죽방멸치의 명맥을 잇게 하는 자부심과 연결돼 있다. 남해군 관계자는 “죽방렴 설치와 어장면허가 제한돼 있어 소량생산만 가능하다. 그만큼 귀한 특산물”이라고 말했다.
죽방렴 방식의 전통을 보존하고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남해군은 2019년 죽방렴 홍보관을 신축했다. 지족어촌체험마을에선 죽방렴 조업 체험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 1월 해양수산부는 죽방렴 방식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했다. 앞서 전남 청산도 구들장 논농업, 제주 밭담 농업, 경남 하동 차(茶) 농업, 충남 금산 전통 인삼농업 등 4건이 한국 대표 농산물로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됐다. 죽방렴 방식이 최종 선정되면 어업 분야에서 처음으로 세계 명품 반열에 오르는 쾌거다. 이에 앞서 죽방렴 방식은 2015년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제는 건어물 형태인 죽방멸치뿐 아니라 멸치쌈밥과 멸치구이 등이 가능한 남해 생멸치도 주문 하루 만에 식탁에서 맛볼 수 있다. 남해군 수협이 2020년 10월 냉동 제품을 해동한 이후에도 세포 손상 없이 본연의 맛 그대로 보존하게 하는 'CAS(Cell Alive System)'를 국내 수협 가운데 최초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남해에서 잡힌 멸치 맛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느끼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김창영 남해수협 조합장은 “남해의 대표 상품인 멸치를 비롯해 남해수협에서 판매하는 수산물은 전국 수협 중에서 유일하게 CAS를 통해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며 “건멸치뿐 아니라 생멸치도 전국 어디서나 남해 수협몰을 통해 주문하면 갓 잡힌 멸치의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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