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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명예회복" 말한 윤석열 당선인, 왜 대구에서 몸을 낮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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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면목이 없다. 늘 죄송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2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검사로서 2017년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이끈 데 대한 사과였다. 당시 수사 결과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이라는 비극으로 끝났다. 윤 당선인을 대구 사저에서 맞이한 박 전 대통령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주로 듣기만 했다고 한다.
'살아 있는 권력'인 대통령 당선인이 불명예 퇴진한 전직 대통령에게 이처럼 한껏 자세를 낮춘 건 생경한 장면이다. 검사로서 한 일을 사과하는 것이 적절했느냐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과의 '구원(舊怨)'을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의 악연은 역사가 길다. 윤 당선인은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대선 댓글 조작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박 전 대통령이 승리한 2012년 대선의 부정선거 혐의를 캔 수사였다. 윤 당선인은 수사 과정에 외압이 있다고 폭로했고, 그해 국정감사에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박근혜 정부 내내 한직을 전전하던 그는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으로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며 박 전 대통령을 다시 한 번 겨눴다.
'수사팀장'과 '피고인'으로 만난 지 6년 만에 마주한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은 따듯한 분위기에서 약 50분간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긴 악연에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은 약 50분 동안 긴 대화를 나눴다. 윤 당선인 측에선 권영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이, 박 전 대통령 측에선 유영하 변호사가 배석했다. 다음은 두 사람의 전언으로 재구성한 대화록.
▷윤 당선인= "식사 잘 하십니까. 건강 잘 챙기고 계십니까."
▷박 전 대통령=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격무를 하니까, 건강을 잘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은 건강이 중요합니다."
▷윤 당선인= "당선되고 나니 걱정돼서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박 전 대통령= "대통령의 자리는 무겁고 큽니다."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열거했고, 정책 계승 의지도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감사를 표했다.
▷윤 당선인= "박 전 대통령의 굉장히 좋은 정책이나 업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것이 굉장히 아쉽습니다. 정책 계승도 하고 널리 홍보도 해서 박 전 대통령께서 제대로 알려지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의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도 언급했다.
▷윤 당선인=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내각과 청와대를 어떻게 운영했는지에 대한 자료를 봤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시고 일한 분들을 찾아뵙고 국정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배우고 있습니다."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달라는 요청도 빼놓지 않았다. 윤 당선인의 제안에 박 전 대통령은 "지금 현재 건강 상태로는 자신이 없는데, 노력해서 가능한 참석해보겠다"고 답했다.
공개된 발언 외에도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은 '속 깊은 얘기'를 나눴다고 유 변호사는 전했다. 두 사람은 왜 밀착하는 모습을 보인 걸까.
대구·경북 등 영남을 중심으로 한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박 전 대통령과 앙금을 해소하지 않으면, 윤 당선인에겐 '영남·보수의 정통성 시비'가 따라다닐 가능성이 상당했다.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층을 결집시킬 필요도 있다.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선 이번 만남이 탄핵으로 잃어버린 명예를 상당 부분 회복하고 정치적 존재감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구시장에 출마한 유 변호사를 측면 지원하며 정치 활동을 사실상 재개했다. 유 변호사가 대구시장 선거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둔다면, '박심'의 부활을 알리는 셈이 될 것이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윤 당선인으로선 마냥 반길 일이 아니라는 것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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