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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가 미워질 때

입력
2022.04.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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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준석 한나라당 비대위원의 발탁을 보도한 J일보 1면(왼쪽)과 C일보 4면 톱 기사.

2011년 이준석 한나라당 비대위원의 발탁을 보도한 J일보 1면(왼쪽)과 C일보 4면 톱 기사.

2011년 12월 27일 J일보의 1면 톱기사는 ‘하버드 출신 26세 비대위원’이었다. 그날 C일보도 1·4면에 이준석 비대위원의 사진을 두 번 싣고 한나라당의 비대위 인선을 소개했다. 4면 톱 제목은 ‘과학고·하버드 수재...“교육사다리가 우리 사회 희망”’이었다.

돌이켜보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화려한 정치 입문은 ‘학벌주의’ 그 자체였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유승민 전 의원의 의원실에서 인턴 경험을 한 게 정치권 인연의 시작이었으니 ‘인맥주의’이기도 했다.

물론 이 대표가 주목을 받은 이유에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무료 과외를 하는 모임을 만들었다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저소득층 봉사 경험이 있는 청년은 많기 때문에 발탁의 직접적인 이유로 보긴 어렵다.

11년이 지나 이 대표는 어떤 정치인이 됐나. 여성, 장애인들과 싸우느라 바쁘다. 요즘은 자신의 성상납 의혹과도 싸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비판을 해왔으니 말을 보탤 필요는 없겠다. 한 여론조사에서 55.9%가 이 대표의 장애인 지하철 시위 발언들을 “장애인 비하”로 봤다.

이런 이 대표가 지방선거 공천에서 젊은 세대,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할당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유능함 위주로 뽑았다며 50·60대 영남 출신 남성 위주의 1차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내각 명단 인물 중 편향된 발언, 담당 분야 전문성 부족, 당선인과의 친분에 따른 발탁 등의 논란이 나오고 있지만 여성도, 장애인도, 청년도 아니니 대강 ‘능력주의’로 뭉뚱그리는 황당한 현상이 보인다.

무엇보다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당선인은 ‘능력자’들인가. 윤 당선인은 토론회에서 자질 부족이 보였으나 어쨌건 검사로서 실적을 쌓았으니 그렇다고 치자. 이 대표는 거리가 있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실적·성과주의이며 학벌주의(degreeocracy)와 동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학벌을 따지지 않는 게 ‘능력주의’ 실현에 중요하다는 해석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N번방 성착취자들의 처벌을 이끌어 큰 공을 세우고 정치에 입문한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학벌로 공격을 받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한림대 나온 애가 무슨 말(정치)을 하냐’는 식의 말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능력주의에 대한 오랜 비판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능력주의에 부합하는 인물은 이준석 대표가 아니라 박지현 위원장인데 말이다.

좋은 학벌은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사회에 해악을 주는 고위층이 있을 때 학벌이 좋으면 더 미워지곤 한다. 그 사람의 성과로 추정해봤을 때 그 학벌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영향력 있는 자리(널리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자리)까지 발탁되지 못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학벌’은 때로 속임수이며, 무임승차이다.

만약 이 대표가 특별한 실적을 토대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면 그의 행보에 대한 사회의 책임은 덜했을 것이다. 사회가 그를 무리하게 발탁한 게 아니니까. 그러니 우린 지금 ‘이준석’이라는 인물을 통해, 학벌 지상주의 사회의 결과물을 관전하고 있는 동시에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능력도 없는 ‘능력주의자’들은 그만 좀 보고 싶다.

이진희 어젠다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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