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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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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의 한 커피전문점에 일회용 플라스틱컵이 쌓여 있다. 뉴스1

지난달 31일 서울의 한 커피전문점에 일회용 플라스틱컵이 쌓여 있다. 뉴스1


"생활 폐기물을 줄이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하필이면 왜 지금 이 조치를 시행하는지 모르겠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일회용 컵 규제를 유예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했던 발언이다. 이 한마디에 이달 1일부터 시행된 식당 및 카페 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 금지에 대한 과태료 부과가 무한정 유예됐다. 이미 일상회복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는 시점에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 때까지'라는 단서를 다는 게 어색할 따름이다. 자칫 6월부터 시행되는 일회용컵 보증금제와 11월로 예정된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등 사용 금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따지고 보면 안 위원장의 논리는 아주 해괴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식당에서 다회용 수저와 젓가락, 물컵을 다 사용해왔다. 그럼에도 유독 카페에서 다회용 컵을 쓰면 코로나19에 걸릴 것처럼 말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일회용품이 다회용기보다 코로나19로부터 더 안전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도리어 전 세계 공중보건 및 식품안전분야 전문가 115명은 2020년 6월 '코로나 시대 다회용품 사용은 안전하다'는 성명서에서 기본 위생 수칙만 잘 지키면 다회용품 재사용 시스템은 매우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다회용기는 사용 후 바로 세척하기 때문에 안전한 반면, 일회용품은 그대로 버려지기 때문에 문제를 유발할 소지가 더 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종이 표면에서 24시간, 플라스틱이나 금속 표면에서 2~3일 생존하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들이 사용 후 버려져 환경미화원 등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을 금지하는 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은 2019년 6월 의회에서 일회용품 사용 제한 법령을 통과시켰고, 일정대로 지난해 7월부터 플라스틱 포크와 나이프, 수저는 물론, 접시, 빨대, 스티로폼 컵과 음식 용기 등의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한발 더 나아가 재활용이 불가한 플라스틱 폐기물에 플라스틱세를 도입해 국가별로 플라스틱 폐기물 1㎏당 0.8유로를 내게 하고 있다. 이는 향후 EU-코로나19 경제회복 패키지 예산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플라스틱은 썩는 데 최소 500년 이상이 걸린다. 재활용을 한다 해도 한계는 여전하다. 근본적인 발생을 줄이지 않으면 환경오염을 막는 건 역부족이다. 미국 국립과학공학의원(NASEM)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플라스틱 배출량은 연간 88㎏에 달했다. 미국(130㎏), 영국(99㎏)에 이어 3번째로 많다. 더욱이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쓰레기는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이 배출되고 있다. 실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대비 2020년 전국 폐기물 배출량이 종이류는 25%, 플라스틱류는 19%, 비닐류는 9% 증가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플라스틱 쓰레기 증가를 방치하는 건 문제 속의 문제를 야기하는 셈이다. 어쭙잖은 명분으로 사람들의 불안을 키우고,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켜선 안 된다. 게다가 이 제도는 2018년에 이미 한 차례 도입됐던 것으로,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코로나19가 잦아든다 해도 우리에겐 더 어려운 숙제가 떨어질 것이다. 그 숙제는 코로나19 퇴치보다 더 오랜 시간, 더 강하게 우리를 압박해올 것이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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