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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줍기' 넘어 '쓰레기 안 만들기'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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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잖아도 심각했던 쓰레기 문제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문제는 생태계 파괴 뿐 아니라 주민 간, 지역 간, 나라 간 싸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쓰레기 박사' 의 눈으로 쓰레기 문제의 핵심과 해법을 짚어보려 합니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의 저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한국일보>에 2주 단위로 수요일 연재합니다.
언제부턴가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모여서 조깅하면서, 등산하면서,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의미의 스웨덴어 플로깅이 '줍깅' 혹은 '쓰줍은 달리기'로 진화하면서 우리 사회에 정착하고 있다.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의 온라인 모임인 '쓰줍인'이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지구를 닦는 모임 '와이퍼스'가 2주년을 맞아 쓰레기 줍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기업들이나 지자체, 환경단체 등에서도 쓰레기 줍는 다양한 행사를 경쟁적으로 열고 있다.
사람들이 쓰레기 줍기에 열광하는 건 환경문제가 누구나 느낄 만큼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나의 소비가 환경을 망치고 있다는 죄책감과 환경을 위해 작은 실천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쓰레기를 줍는 자발적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쓰레기 줍기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실천이면서 동시에 실천의 결과를 가장 빠르게 느낄 수 있는 행위다. 가성비가 아주 좋기 때문에 환경실천, 환경교육의 첫걸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자발적으로 나와서 쓰레기를 줍는 마음은 소중하고 고귀하다. 하지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쓰레기 줍기 캠페인을 하면서 빠질 수 있는 함정도 조심해야 한다.
특히 기업이 주도하는 쓰레기 줍기 캠페인은 경계해야 한다. 플로깅은 2016년 시작됐지만 쓰레기 줍기 캠페인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환경캠페인으로 인정받고 있고,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미국을 아름답게(Keep America Beautiful)'는 1953년 시작됐다. 쓰레기 문제를 미국 전역의 이슈로 부각시켰다는 평가도 있지만, '가장 성공적이면서 오래된' 그린워싱이라는 비판도 있다. 쓰레기 문제를 쓰레기를 양산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담배꽁초 문제를 해결하려면 담배회사가 직접 투기방지를 위한 행동에 나서도록 해야 하는데, 흡연자들을 대상으로 "꽁초를 재떨이에 버리자"는 식의 캠페인을 하는 식이다. 캠페인의 시작 자체가 일회용품 포장재에 대한 규제강화를 막기 위한 기업들의 불순한 의도였다는 지적도 있다.
1970~80년대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자연보호 캠페인도 같은 맥락이다. 환경오염의 주범은 정작 따로 있는데, 마을 주민들에게 쓰레기를 주워 환경을 보전하자는 식의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벌였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일요일마다 마을을 쓸고 쓰레기를 주우러 다닌 기억이 생생하다.
쓰레기 문제는 개별 소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쓰레기를 잘 줍는다고 해서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쓰레기를 줍는 캠페인이 쓰레기 문제를 야기하는 기업의 문제를 가리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쓰줍인이나 와이퍼스가 담배꽁초를 주우면서 담배회사에 책임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동시에 전개한 것은 쓰레기 줍기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쓰레기 줍기 캠페인은 쓰레기를 주우면서 쓰레기가 양산되는 구조의 문제, 이런 구조를 만든 기업의 문제를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조금 있으면 지구의 날 행사로 전국 곳곳에서 쓰레기 줍기 행사가 열릴 텐데.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치지 말고 우리 모두의 인식의 확대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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