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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실패한 인구 문제...ESG 앞세운 기업이 해결사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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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 단위로 화요일 연재합니다.
<35>기업도시, 소멸지역 살릴 해결책으로 부상
'집단자살'로도 표현되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2018년 합계출산율이 0.98명을 찍으며 전대미문의 1명 밑을 뚫더니 2021년 0.81명까지 추락했다. 한국의 초저출산 문제는 해외에서 더 주시하고 있다. 북핵보다 무섭다고까지 한다.
이제는 1순위 소멸국가 경고를 위기극복의 반전모델로 바꿀 때다. 집단자살로 더 진행되지 않도록 초월적 대응방안을 마련할 시점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빨리 손쓰지 않으면 궤멸은 시간문제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자원·주체·방식 등 새로운 밸류체인을 찾아야 한다.
인구변화의 원인은 많지만, 진원은 사실상 한곳을 향한다. 먹고살기 힘들어 자녀출산을 연기·포기한 청년세대의 등장이 인구구조를 물구나무형 가분수로 역전시킨 것이다.
밑(출산)은 줄고 위(고령)가 늘면 버틸 재간이 없다. 어려워진 돈벌이가 저출산의 불씨를 댕겼고, 저성장이란 기름까지 부어지며 상황은 악화됐다. ‘교육→취업→결혼→출산’마다 금전불안이 막아서니 생애경로는 거부된다.
문제의 원인을 알았다면 해법은 의외로 쉽게 나온다. ‘복지=고용’처럼 일자리만 주어지면 해결된다. 고품질의 일자리면 금상첨화다. 부모세대에게 무난했던 장기·안정적인 양질고용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저출산을 풀어낼 모범답안이다.
행복은커녕 생존조차 힘들어졌는데 고위험의 출산을 결정할 청년은 없다. 원하는 일자리로 현재만족·미래행복을 꿈꿔야 자녀출산도 고려대상이 된다. ‘취업→소득→저축’과 ‘결혼→출산→양육’은 동반된다.
‘출산장려=양질고용’에 이견은 없다. 단 지금껏 출산과 고용을 직결시킨 정책사례는 찾기 어려웠다. 인구대응을 복지로만 접근하니 제한적이었다. 곤란한 접근방식이다.
사실 일자리는 부처 초월의 최상위 의제다. 저성장에 맞춘 혁신인재가 요구되고(교육), 채용·임금·승급 등 근로방식은 수정되며(노동), 신고용을 창출할 환경정비는 절실하다(산업).
아울러 세대부조형 사회보험이 지속되게 조율하고(복지), 자원배분을 위한 달라진 부담체계도 필요하며(조세), 지역균형의 일자리 포트폴리오도 요구된다(행정). 또 결혼·출산을 위한 주거공간이 재편되고(건축), 엇갈린 일자리 미스매칭을 해소하며(중기), 무엇보다 장기지속을 위한 그랜드디자인이 절실하다(기재).
즉 청년고용은 18개 중앙부처 모두를 포괄하는 이슈다. 물론 고유업무와 연결된 기존정책은 많다. 단 0.81명의 출산율을 보면 그간의 정책효과가 낮다는 건 자명해졌다. 정치권도 잘 안다. 20대 대선공약도 ‘인구문제=청년취업’으로 귀결됐다. 시선차이는 있지만, 저출산의 우선과제로 청년고용에 동의한다. 기업연계(윤석열), 공공기관(이재명), 리쇼어링(안철수) 등이 그렇다. 관성적인 속 편한 정책으로 20년간 380조 원을 썼다며 모두가 기존 한계를 질타했다.
사실 고용창출은 기업의 역할이다. 외환위기·금융위기처럼 일시충격의 완화차원에서 정부발 안전장치는 좋지만, 어디까지나 버퍼존에 한정되는 게 맞다.
공공일자리로 대변되는 취약계층의 고용안정은 시장영역에서 비켜선 만큼 정부 역할에 가깝다. 그걸 빼면 원하는 일자리는 기업 관할이다. ‘저출산=취업난’이라면. 일자리 결정권을 쥔 시장·기업의 역할·의지가 관건이다. 시장실패가 있다고 심판이 선수로 뛰면 부작용은 커진다. 원할한 고용창출을 위한 유도·지원방식이 바람직하다. ‘기업성장→고용안정→청년희망→출산결정’은 논리비약 없는 상식적 연결가치다. 진영논리에 매몰된 선악갈등은 충분히 경험했다. 위법·범법행위는 원칙대로 맞서되 시장활력까지 규제잣대라면 곤란하다.
기업이 정부의 경쟁상대가 아니듯 시장도 정책의 견제대상은 아니다. 어정쩡한 고정관념으로 사회문제를 풀 수는 없다. 지원(Incentive)과 규제(Penalty)의 영리한 결합을 통한 고용독려가 좋다. 저출산발 집단자살은 사회전체의 가용자원을 총동원해도 쉽지 않은 위험경고다. 정부·기업의 달라진 이인삼각 협력체계로 집합성과(Collective Impact)를 노릴 때다.
기업도 달라질 순간이다. 절대진리였던 고도성장형의 주주중심·이익극대화는 변화지점에 섰다. 돈만 잘 벌면 좋았던 시절과 비교된다. 대신 지속가능한 사회유지를 위한 문제해결의 전도사로 요구받는다. 화두인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가 새로운 기업가치의 강력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아직은 환경오염(E)·격차양산(S)·편향지배(G)에 한정되나, 해결할 사회문제는 확장된다. 기업 문제 해결의 중대한 당사자란 얘기다. 특히 S가 관할하는 고용평등·여성활약·노동환경·지역사회 등은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앞날은 기업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청년고용·출산장려를 위한 기업등판은 선택이 아닌 숙명의 문제다.
ESG는 기업에 귀찮고 이득이 없는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더 오래 잘 벌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팔아야 할 고객·시장이 있어야 매출·이익도 생겨나기 때문이다. 집단자살의 공동(空洞)화된 사회에 홀로 남아 본들 성장은 없다. 결국 인구위기는 악재가 아닌 호재요, 경제·사회가치를 아우르는 양수겸장의 기회다. 후속세대의 건강한 지속공급은 기업성장의 토대란 점에서 ESG 파도에 슬기롭게 올라타는 기업변신이 바람직하다.
‘기업(고용)+인구(출산)’의 실천해법은 다양하다. 단 허용시간의 효율화와 기대효과의 극대화를 노린다면 기업도시란 모델이 우선순위로 들어온다.
선행사례도 있다. 1958년 일본 아이치현 고모로시는 지자체명을 아예 도요타시로 바꿨다. 기업도시로의 절실한 전환실험이었다. 선택은 옳았다. 도요타시는 이후 자동차 공업도시를 지향하며 관련된 전후방 클러스터를 완성했다. 일자리는 늘었다. 총인구의 70~80%가 도요타 밸류체인의 일자리일 정도다.
도요타란 기업의 본사·공장·대학 등이 집적하며 역내의 발전적 순환경제를 달성했다. 법인세 등 재정수입이 탄탄하니 공공서비스 품질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인구쟁탈의 소멸경고보다 기업주도의 상생협력이란 선구모델로 평가받는 이유다. 지역은 거듭해 발전한다. 회사와 주민을 잇는 사회공헌·자원공유가 활발하다. 회사병원을 주민에게 개방하고, 공유전기차로 이동편의를 돕는다. 반대로 금융위기 때 잉여화된 외국인근로자는 시당국이 고용·취업을 도와줬다. 정상화 후 회사복귀로 이어지며 연대퍼즐을 맞췄다.
지역소멸·인구감소의 대안비전은 기업도시 모델로 현실화되고 있다. 상당한 특례조치로 사활을 걸며 테슬라 본사를 유치한 텍사스 오스틴시나 아마존 제2본사를 들이고자 눈물겨운 유치총력전에서 승리한 버지니아 알링턴군이 대표적이다.
하나같이 기업도시의 지속가능성에 주목했다. 작게는 고용과 출산을, 크게는 경제와 번영을 믿는 생존카드다. 지방소재 기업마저 인재·기회를 찾아 수도권에 몰려드는 한국사회로선 부러운 대목이다.
다만 기업도시를 내세운 탐욕·약탈적 자본주의는 경계대상이다. 정부도 복지적 고용정책에서 벗어나 혁신적 산업정책으로 기업하기 좋은 지역환경을 돕는 게 좋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지역·주민이 중심이 된 기업활용설명서의 이해·적용이 중요하다. 기업도시는 잠재력과 지속성이 구비된 매력적인 선택지다. 밥벌이를 위한 좋은 일자리 앞에 피아는 없다. 영웅의 귀환에 성대한 대접은 당연하다. 지역을 되살릴 달라진 기업역할에 주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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