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없는 윤석열표 입시정책...학원들과 학부모의 머릿 속 복잡한 까닭은

입력
2022.04.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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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없는 윤석열표 교육공약에 학원가 긴장
정시확대에 고교생 '수능전문 재수학원' 북적
자사고 부활 조짐에 중학생 학부모 고심
AI 입시반영 공약에 "학원 과목 늘어나나" 근심

3월 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정시확대' 기조가 이어지면서 고 1, 2학년 대상의 겨울방학 수능 단기특강 수강생이 전년 대비 50%가량 늘었다. 뉴시스

3월 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정시확대' 기조가 이어지면서 고 1, 2학년 대상의 겨울방학 수능 단기특강 수강생이 전년 대비 50%가량 늘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교육 공약에는 특별한 '브랜드'가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자유학기제, 문재인 정부의 고교학점제처럼 과거 정부 때 없던 교육 정책을 새로 내놓은 게 없다는 말이죠. 새 교육 공약을 밀어붙이다 학생‧학부모들에게 혼란을 주기보다 기존 보수 정권이 실시했던 정책들을 되살리거나 강화해 공정한 입시제도를 만들려고 합니다.

한데 기존 정부들에 비해 교육 공약이 '너무 심플'하다 보니 되레 학부모들 고민이 늘었다고 하네요. 정시확대 공약에 학원가는 벌써 변화 조짐이 보입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입시 제도는 어떻게 변할지, 대치동이 대표하는 입시 학원가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지, 학부모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등을 정리해봤습니다.



대선 기간 '수능 대비반'에 몰린 고교생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집무실로 출근을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집무실로 출근을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 트렌드는 이미 지난해 연말부터 변화를 보였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정시확대 정책이 올해(2023학년도 대입)로 '완성'되거든요. 서울 주요 16개 대학들은 모집 정원의 40% 이상을 정시로, 나머지 대학들은 30% 이상을 정시로 뽑습니다. 여기에 윤 당선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둘다 대선 당시 교육 공약으로 정시 확대를 발표한 터라 학교별 내신 성적을 신경써주는 동네 교습소보다는 수능 위주의 대형학원, 특히 대치동 학원가에 학생들이 몰리는 분위기입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대입재수학원이 겨울방학 기간 재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윈터 스쿨' 수강생이 전년 대비 50% 늘었다"고 말합니다.

이달 말 2024학년도 대학별 입학 전형 발표를 앞두고 있어 사실 고 2, 3학년은 윤 당선인의 공약과는 무관한 입시제도를 치를 겁니다. 임 대표 역시 "당선인 '룰'이 적용되는 건 내년 4월 발표되는 2025학년도 대학별 수시‧정시 입학전형에 적용받는 고 1부터"라고 하더군요. 다만 "정시확대 기조는 문재인 정부부터 꾸준히 이어졌기 때문에 학원 선택의 기조가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에 '입시제도 단순화' 공약으로 예체능 등을 제외하고는 특기자 전형, 논술 전형 등이 대폭 줄어들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정시를 얼마만큼 늘릴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7월 꾸려지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숙의를 거칠지, 다른 창구를 통해 국민 여론을 수렴할지조차 알 수 없죠. 다만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대학 신입생 모집 정원의 60% 이상을 정시에서 선발하도록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입니다. 실제 대학들이 정시로 이 정도 비율을 선발한다면 대입의 판도는 확실히 바뀔 듯합니다.



정시 확대... 상위권 대학 '수능 무력화' 역효과 낼 수도

서울대 정문. 서울대는 2023학년도 신입생 모집정원 중 40%를 정시로 선발하면서 정성평가인 '교과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대 정문. 서울대는 2023학년도 신입생 모집정원 중 40%를 정시로 선발하면서 정성평가인 '교과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학령인구 감소 현상이 정시확대 공약과 만나 뜻밖의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조금 복잡하지만, 설명해보죠.

지난달 31일 공개된 서울대 2023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을 보면 정시에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비슷한 '교과평가' 항목을 넣었습니다. 1차 대학수학능력평가(수능)로 정시 정원의 200%를 선발하고 2차에서 수능(80%)과 정성평가인 '교과평가' 점수(20%)를 합쳐 학생을 선발한다는 겁니다. 특히 올해 말 처음 도입하는 지역균형 정시에서는 교과평가가 100점 만점 중 40점을 차지합니다. 정부 방침대로 전체 정원의 40%를 정시로 뽑지만, '수능의 무력화'가 가능하다는 말이죠.

지금보다 정시가 더 확대된다면, 다른 상위권 대학들이 이런 방법을 도입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유대영 착한입시상담 대표는 "인구 감소로 학생 모집이 어려운 지방대는 기존처럼 수능 위주로 정시 학생을 선발하겠지만, 여유 있게 학생 모집이 가능한 서울 소재 대학들은 올해 서울대 입시를 살펴보다가 정시에 '수능+학종 방식'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수능은 재수생이 유리한 입시제도인데, 똑똑한 재학생을 많이 뽑기 위해서요. 서울대처럼 정시에 정성평가를 적용하면, 정시를 확대하는 의미가 없겠죠. 만약 윤석열 정부가 대학의 정시 모집 방식까지 일일이 '규제'하면 또 혼란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자사고 특목고 부활하나... 갈등하는 중학생 학부모

2019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종로학원 고교 및 대입 특별 설명회' 모습. 초청 강사가 초, 중등 학부모 대상으로 영재학교, 과학고, 자사고, 의대, 치대, 한의대, 수의예과, 약대 진학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9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종로학원 고교 및 대입 특별 설명회' 모습. 초청 강사가 초, 중등 학부모 대상으로 영재학교, 과학고, 자사고, 의대, 치대, 한의대, 수의예과, 약대 진학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약에 직접 담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였던 자사고‧특목고 폐지는 윤석열 정부에서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 당선인이 유튜브 방송이나 언론 인터뷰에서 "학생들의 선택권을 위해 고등학교가 다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데다, 윤 당선인과 공동 정부를 만들기로 한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도 후보 때 '외고·자사고 폐지 전면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국회 동의 없이 백지화가 가능하다는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죠. 문재인 정부는 외고·자사고·국제고를 2025년 3월 일반고로 전환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쳤는데, 새 정부는 이 시행령만 원래대로 되돌리면 됩니다.

실제 대선 이후 외고, 자사고 입시에 관심을 두는 중학생 학부모가 부쩍 늘었습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중2 자녀를 키우는 40대 윤모씨는 "대선 후 교육 방향이 바뀐 부분이 분명히 있다"면서 "특목고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여, 아이의 특목고 진학을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씨는 "주변에서도 특목고나 정시 확대 관련 얘기를 많이 한다"며 "실제 수시 대비용 학원 수요도 낮아졌다"고 덧붙였는데요. 그런데 서울대처럼 다른 대학들의 정시 제도도 복잡해지면, 학부모들의 입시 준비 방향도 또 달라지겠죠.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중1 딸을 키우는 50대 김모씨도 "대선 끝나고 자사고 입시 준비를 시작해야겠구나 생각했다"면서 "자사고가 유지된다면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사고를 보내는 게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서울 영등포구에서 고3 아들, 중3 딸을 키우는 이모씨도 "둘째의 자사고 원서를 쓸지 말지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반반"이라면서 "자사고 폐지 예고에 인기가 시들했는데 만약 다시 계속 유지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고교학점제와 맞물려서 자사고 커리큘럼이 일반고에 비해 탁월하다면 (입시 준비를) 고려해야 하지 않겠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AI 입시제도에 반영... 고민하는 초등생 부모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실 현재와 같은 수능제도가 2027학년도까지 확정됐기 때문에 중학교 2학년까지 대학 입시의 큰 틀은 확정된 것과 같습니다. 정시 비중이 늘든, 지금과 같든 고교 내신과 학생 성향을 감안해 모집 분야를 정하면 됩니다. 중2 학생들이 재수만 하지 않는다면요. 고교학점제와 맞물려 진행 중인 교과서 개정, 그에 맞춰 바꿀 새 수능제도는 2024년에 발표해 중1 학생들이 수능을 보는 2028학년도부터 적용됩니다. 고교학점제가 예정대로 2024년 전면 시행될지 논란이 분분합니다만, 예정대로라면 '윤석열표 교육'은 중1부터 직접 영향을 미칠 거란 얘기죠.

중1이나 초등학생 학부모들에게 먼 얘기일 수 있지만, 윤 당선인이 'AI(인공지능) 교육을 강화하고 입시에도 반영하겠다'고 공약하면서, 구체적인 방식이 나오기 전까지 상당한 혼란이 예상됩니다. 공약을 보면 ①초등학교에서 코딩교육,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AI 교육을 필수화하고 ②프로그래밍, 데이터 수집, 정보 분석, AI 소프트웨어 활용 교육을 확대하며 ③이를 대학 입시에도 반영하겠다고 했습니다. 입시반영 방식이 수시, 정시 중 어떤 건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사실 현 정부에서도 공교육에 AI 수업을 도입하겠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지난해 발표된 2022교육과정 개정 계획에 따르면 초등학교 땐 간단한 AI프로그램을 배우고 중·고교에서는 AI 관련 기본·심화 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합니다. 단, 학교장‧학생 선택사항으로요. 이 발표가 나오고 학부모들 사이에 코딩 열풍이 불었습니다.

서울 방배동에서 초등 4학년 아들을 키우는 30대 우모씨는 "아이를 문화센터에서 하는 코딩 수업에 보낸 적 있다"면서 "놀다 오는 수준인데도 제가 이해를 잘 못하겠더라"고 말하더군요. AI가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면 접하지 않았던 신산업 분야이고, 알면 취직도 잘된다는데 학교 교육에 들어온다고 하니 일단 자녀에게 가르쳐 본 겁니다.



'학원가 공갈 마케팅' 기승 전에 입시 확정해줘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경제 1·2분과, 과학기술교육분과 업무보고 회의에 참석해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경제 1·2분과, 과학기술교육분과 업무보고 회의에 참석해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선택사항으로 가르치겠다는 계획에도 이 정도 여파가 불었는데, 대입까지 연결되면 새로운 '입시 시장'이 열릴 거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놀다 오는 수준"의 코딩 수업을 구경한 학부모들도 "이해를 잘 못하겠"는데, 일선 교사들을 재교육해 AI 교육에 투입한들 'AI 인재'가 양성되겠냐는 겁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당선인이 AI 교육을 대입에 반영한다고 명시한 만큼, 사교육 상품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는데요. 문제는 여론수렴 후 정책 발표까지 기간이 너무 길 때 부작용이 크다는 점입니다. 송 정책위원은 "대입 반영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도 안 나온 상태가 지속되면, '이 학원에 가야 AI 입시에 대비할 수 있다'는 '공갈 마케팅'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지역마다, 자녀 나이 따라, 이념성향 따라 학부모들이 윤석열 정부에 원하는 교육정책은 다 다르지만, 딱 하나 공통점은 있습니다. 기존 교육 정책의 기조를 흔들지 말고, 가능하면 빨리 대입 정책을 확정해달라는 겁니다.

경기 분당에서 중 1, 초등 4학년 자녀를 키우는 40대 문모씨는 "엄청난 걸 하겠다고 이것저것 도입 안 했으면 좋겠다"며 "괜히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겠다고 하면 혼란만 생기고, 당황스러워서 거기에 대비하기도 어렵다"고 주문했습니다. 학부모 윤모씨도 "중 2를 대상으로 학점제를 시범운영한다는데, 아이들을 상대로 시범 사업을 하는 게 못마땅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송경원 정책위원은 "보수 진보를 떠나 교육정책은 가급적 손대지 않고, 손대면 미리 예고해줘야 한다"며 "우선 자사고‧외고 폐지 여부, 고교학점제 전면시행 일정부터 올해 안에 어떻게든 결론내서 확정해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윤주 기자
김가윤 인턴기자
김호빈 인턴기자
소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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