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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병원 판결로 영리병원 열리나? "당장 아니지만 좋지 않은 판례 남겨"

입력
2022.04.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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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원희룡의 '조건부 허가'가 패소의 출발점"
"녹지, 영리병원 포기해도 손해배상은 청구할 듯"
"윤석열 인수위, 의료 민영화 찬성하는 구성"

녹지병원 전경.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제공

녹지병원 전경.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제공

제주도에 설립이 추진된 국내 첫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달아 개원을 허가한 것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5일 나왔다.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6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 판결에 대해 "법적으로는 내국인 진료 가능한 영리병원이 개설 가능하게 됐다"며 "하나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하나를 물꼬로 해서 두 개, 세 개를 만드는 건 쉽기 때문에 안 좋은 판례를 남긴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제주법원 행정1부는 5일 중국 녹지그룹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제주도 측의 '내국인을 제외하고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녹지병원을 운영하라'는 조건부 허가에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공론투표 결과 '불허'에도 '조건부 허가'... 결과는 "소송 줄줄이 패소"


2018년 12월 원희룡 제주지사가 제주도청 브리핑룸에서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설 허가 방침을 밝히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자료사진

2018년 12월 원희룡 제주지사가 제주도청 브리핑룸에서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설 허가 방침을 밝히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자료사진

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싼 논란과 법정 분쟁의 역사는 3년이 넘는다. 녹지제주는 2017년 8월 서귀포시 동흥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내에 녹지국제병원 건물을 완공하고 제주도에 개원 허가 신청을 냈다. 하지만 영리병원에 대한 여론의 거부감이 상당해 허가 절차는 길어졌다.

2018년 8월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는 도민을 대상으로 영리병원의 개설 허가 여부를 놓고 공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59% 대 39%로 불허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 해 12월 이를 뒤집고 위의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넣어 조건부 허가 결정을 내렸다.

이 ①조건부 허가에 반발한 녹지제주는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거부했고, 의료법에 정해진 개원 시한인 2019년 3월 4일까지 개원하지 않았다. ②제주도는 '병원은 개설 허가 후 3개월 이내에 개원해야 한다'는 의료법 조항을 근거로 그해 4월 17일 조건부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이에 ③녹지제주는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 ④이 재판에서는 올해 1월 13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번 재판에서는 이와 별도로 진행된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에 대해서도 위법 판결이 나온 것이다. 전 국장은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에 대해 "의료법상 진료 거부를 할 수가 없게 돼 있고, (영리병원 설립 근거인) 제주특별법상에도 내국인 진료를 제한할 수 있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녹지제주로부터 소송이 걸리면 제주도가) 질 가능성이 꽤 있다는 걸로 예측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희룡 지사는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조건부 허가를 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는 소송을 당했고 줄줄이 지금 패소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 결정(조건부 허가)이 지금 이 모든 사태의 출발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녹지병원 지분 국내 법인으로 넘어가 영리병원 설립은 안될 듯"


5일 오후 서귀포시 녹지국제병원 모습. 현재 녹지병원에는 의료장비와 인력이 마련돼 있지 않다. 제주=뉴스1

5일 오후 서귀포시 녹지국제병원 모습. 현재 녹지병원에는 의료장비와 인력이 마련돼 있지 않다. 제주=뉴스1

다만 판결이 났다고 녹지병원이 바로 내국인 진료까지 더해서 개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제주도는 녹지제주의 영리병원 개설 허가를 다시 취소할 방침이다. 제주도 측은 녹지제주가 녹지국제병원 지분을 지난해 9월 이전에 국내 업체인 ㈜디아나서울에 매각한 상태라 영리병원을 운영할 자격을 잃었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제주도 내 영리병원 설립 조건에 외국 자본 비중이 50%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당장 녹지병원의 영리병원 운영 가능성은 없어진 셈이다. 현재 녹지국제병원 건물 자체는 2017년에 완공된 상태지만 장비나 인력 등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새 소유주는 이와 별개로 비영리 암 치료 전문병원을 설립할 계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전 국장은 법원 판결 등을 근거로 녹지 측이 제주도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녹지가 더 이상 개설하고 운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 차례 대법원 판결을 녹지가 이겼고, 이번에 내국인 소송까지도 이겼기 때문에 이걸 근거로 설립까지 다 했는데 운영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제주도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의회 등은 이와는 별도로 제주특별법에서 아예 영리병원 관련 조항을 삭제해 개설을 원천적으로 막는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나 실제 입법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윤석열 공약에도 의료 민영화 추진 나타나"


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안철수(가운데) 인수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권영세 부위원장, 오른쪽은 원희룡 기획위원장. 서재훈 기자

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안철수(가운데) 인수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권영세 부위원장, 오른쪽은 원희룡 기획위원장. 서재훈 기자

전 국장은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인수위 기획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새 정부가 의료 민영화를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리병원 허가를 한 당사자로서 전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일단은 윤석열 당선인 본인이 후보 시절에 영리병원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고,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영리병원은 의료산업 발달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가 있다"면서 "기획위원장인 원희룡이 이걸(영리병원) 실제로 허가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이 그룹이 의료 민영화를 찬성하는 인수위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해 원 위원장 본인은 대선 직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의료민영화를 절대 안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결국 제주 영리병원을 '조건부 허가'한 적이 있는 자신의 이력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전 국장은 또 "윤석열 당선인 본인의 공약을 살펴보면, 개인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서 의료 서비스를 활성화한다든지, 영리 사업자들을 의료시장에 진출시킨다든지, 각종 의료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바가 있기 때문에 명백하게 의료 민영화를 추진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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