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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에 뜬 'X세대 이효리' 만나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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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효리네!" 5일 오후 2시쯤 서울 성동구 대림창고. 커피를 손에 들고 지나가던 한 여성이 멈칫하더니 이렇게 말하며 함께 가던 지인을 멈춰 세웠다. 두 여성이 막 지나가던 건물 외벽엔 이효리 그래피티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무지갯빛 블라우스를 화려하게 차려입은 듯한 이효리는 90년대식 짙은 화장을 한 얼굴로 성수동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성수동 폐공장에 걸린 이효리 그래피티
요즘 Z세대에 가장 '힙'한 거리에 X세대 스타 이효리 그래피티라니. 이 작업은 8일 티빙의 예능 '서울 체크인' 정규 1회 공개를 앞두고 기획된 이벤트다. 작가 제바가 '도시 속의 이효리'를 주제로 직접 그렸다. 6일 전화로 만난 제바는 "제주에 살지만 이효리는 일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오고, 그 일 대부분은 이효리가 연예인으로 화려함을 보여주는 작업"이라며 "도시의 상징인 네온 컬러로 그 이미지를 부각했다"고 말했다.
이 그래피티는 가로 8.5m, 세로 4m 크기로 제작됐다. 제바는 지난달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 동안 성수동 한복판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이 걸린 바로 옆 카페 건물엔 공교롭게도 립스틱을 짙게 바른 금발의 외국 중년 여성의 사진이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20~30년 뒤 이효리가 이 사진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효리의 그래피티가 걸린 창고 건물의 붉은색 벽돌은 색이 바랬고, 곳곳이 움푹 파였다. 세월의 공격을 고스란히 간직한 모습이었다. 녹슨 파이프, 폐목재 등 옛 건축 소재가 그대로 드러난 옛 공장들이 줄줄이 늘어선 이 일대는 요즘 Z세대가 찾는 명소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바로 그곳에 이효리가 '서' 있다.
"어떤 게 본성인지 모르겠어" 제주댁의 고민
이효리만큼 삶의 1부와 2부가 다른 이가 있을까.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단 10분이면 충분하다고 당당하게 노래('텐미닛'·2003)하던 핀업걸은 2013년 결혼한 뒤 삶의 궤적을 180도 틀었다.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간 그녀는 요가와 다도에 빠져 살며 마음 챙김을 한다.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화장기 없는 민얼굴로 장에 나가 밭에서 직접 키운 콩을 팔기도 했다. 그런 이효리의 손톱은 죄다 뭉툭하다.
"요즘에 '도덕경'이란 책을 봐요. 일어나서 어떤 챕터를 딱 펼쳤는데, 그 내용이 본성에 따라서 사는 삶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그게 맞는 삶이라는 거예요. 화려한 모습으로 노래하고 춤추고 그런 걸 좋아하는 게 나의 본성인지, 자연에 묻혀서 사는 게 내 본성인지 이젠 헷갈려요."('서울 체크인')
올해로 제주 생활 9년 차. 이효리가 낯선 제주살이를 단층처럼 쌓아갈 때, 많은 사람은 그녀의 삶에서 새 무늬를 발견해갔다. '무한도전'으로 유명한 김태호 PD도 이 지점을 포착했다. 1월 MBC를 떠난 김 PD는 독립 첫 작품으로 이효리와 손잡고 '서울 체크인'을 내놨다. '제주댁' 이효리의 서울 일탈을 담은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효리에게 서울은 이제 '체크 인'해야 하는 곳이다. 도시 이방인이 된 그녀는 서울을 돌아다니며 "신기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이날 화상으로 만난 김 PD는 "이효리가 서울에서 지낼 때 밤에 들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신기해하더라"며 "제일 트렌디할 거 같은 스타가 서울을 어색해하고 '나 혼자만 다른 거 같다'고 말하는 게 새롭게 보였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에게 '아, 서울이 이랬지'란 느낌도 주면서 이효리가 서울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나도 저런 고민이 있었는데' 식의 공감을 주고 싶었다"는 게 김 PD가 들려준 기획 의도다.
"내가 모를 것 같아?" '언니'의 위로
8일 공개에 앞서 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서울 체크인' 티저 영상에서 이효리는 김완선, 엄정화, 보아, 화사와 함께 파자마 차림으로 모여 술잔을 기울인다.
"너무 늙어 내 얼굴 보기 싫은 거예요. (대기실) 밖에서 하하 호호 하는 소리 들리고 다 바뀌었는데 나만 그 자리에 있는 거 같은 거죠. 영화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처럼 혼자 늙으면서. 되게 기분이 이상했어요 진짜"(이효리) "내가 그 기분을 모를 것 같아?"(엄정화)
김완선, 엄정화는 50대, 이효리는 40대다. 10~20대에 무대를 빛냈던 여성들이 어느덧 중년이 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를 보여주는 게, 중년 여성 콘텐츠 빈곤 속 '서울체크인'의 미덕이다. 1월 파일럿으로 딱 한 회만 공개된 뒤 '서울체크인'은 시청 방문자 수가 티빙 역대 화제작인 '환승연애',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보다 2배 빠른 속도로 늘었다. 티빙이 '서울체크인'을 8일부터 정규 편성한 배경이다. 공희정 방송평론가는 "이효리의 자기주관대로 사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판타지를 주기도 하지만, 어느덧 40대를 넘은 그녀의 고민은 누군가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며 "유리천장에 막혀 중년 여성 롤모델을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 보니 시청자들이 이효리의 목소리에 꾸준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효리와 김완선, 엄정화, 보아, 화사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댄스가수유랑단'을 결성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더 누그러지고 지난 2년과 다른 세상이 와 여러 관객과 부담 없이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댄스가수유랑단이 버스 한 대로 전국을 다니며 관객을 만나자는 약속을 했어요. 그 프로젝트는 다른 콘텐츠로 준비하지 않을까 싶어요."(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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