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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의 인플레 전쟁은 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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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총재 취임, 바로 '인플레 전쟁' 수행
저금리 시대 거치며 한은의 전투력 약화
옛날식 금리인상 아닌 고난도 처방 기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지명을 놓고 신·구 권력 간 신경전이 벌어진 건, 사실 5년 전 대통령 탄핵의 불똥이었다. 한은 총재 4년 임기는 항상 3월 31일 끝나는데, 탄핵 탓에 대선이 12월에서 3월로 바뀌는 바람에 총재 교체 시점이 하필 대통령 권력 이양기에 걸치게 됐다.
하지만 갈등의 근본적 이유는 임기 보장직이어서다. 한은 총재를 아무 때나 바꿀 수 있다면, 이렇게 두 권력이 부딪힐 까닭이 없다. 한번 임명하면 4년을 가야 하기 때문에 예민했던 거다. 검찰총장 감사원장은 끌어 내려도, 한은 총재는 하차시키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한은 총재 임기 보장은 중앙은행 독립을 법제화한 1997년 말 한은법 개정의 결과다. 이후 전철환 박승 이성태 김중수 이주열 등 5명의 한은 총재는 단 한 명도 중도 하차없이 모두 임기를 채웠다.
이성태 총재(2006~2010) 때가 고비였다. 전철환(1998~2002) 박승(2002~2006) 총재는 김대중~노무현 민주당 정부였기 때문에 문제없었지만, 이성태 총재는 재임 중 여야 정권이 바뀐 터라,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고교 선배(부산상고)이자 업무 스타일까지 깐깐한 이성태 총재가 애초부터 달갑지 않았다. 그런데 리먼 사태가 터졌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 MB 정부는 그를 교체하지 않고, 금융위기 수습책임을 맡겼다. 이유가 어떻든, 이성태 총재는 정권 교체 후에도 임기를 지킨 첫 한은 총재가 됐다.
지난달 퇴임한 이주열 총재는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했다. 그리고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연임됐다. 정권 교체 후 연임까지 된 건 중앙은행 역사상 큰 사건이었다. 레이건이 임명했던 그린스펀 연준 의장을 클린턴이 8년 내내 함께했던 것처럼, 트럼프가 임명한 파월 현 의장을 바이든이 재신임한 것처럼, 이제 한은 총재 임기 보장은 정권 교체와 단임의 벽까지 넘어 바꿀 수 없는 불문율로 자리 잡게 됐다.
이창용 후보자는 역대 한은 총재 중 스펙이 가장 화려하다. 하버드 경제학 박사에 서울대 교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고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다. 이론이 단단하고, 금융행정 경험이 있으며, 세계경제 흐름을 직접 다뤘고, 글로벌 네트워크도 풍부하다.
지난 10년, 한국 경제는 인플레를 잊고 살았다. 돈이 많이 풀려도, 수입 개방과 혁신적 온라인 유통 플랫폼 등장으로 물가는 잘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과잉 유동성에 글로벌 공급망이 뒤엉키면서 '초인플레'를 겪게 됐다.
인플레와 맞서라고 만든 게 중앙은행이고, 이창용 후보자는 취임과 동시에 '인플레이션 파이터'가 되어야 한다. 하필 금리인상기에 중앙은행 수장을 맡은 걸 불운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금리-저물가의 태평성대엔 중앙은행과 총재의 존재감은 절대 빛날 수 없다.
한은은 2012년 이후 인플레와 싸운 경험이 없다. 파이터 기질이 많이 약해졌을 것이다. 실전 경험이 없어 감(感)도 1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무조건 금리만 올리는 처방은 기계적이고 단순하다. 그사이 경제 구조가 얼마나 복잡해졌나. 정책 파급 경로는 또 얼마나 변했겠나. 옛날처럼 귀 막고 '우리는 인플레만 잡으면 끝!'이란 식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정부 경제 정책과 보조를 맞춘다고 해서 중립성 위배 운운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어렵게 쌓아온 중앙은행의 권위다. 얼마나 중요하면 임기를 4년씩이나 보장하겠는가. 실물경제를 죽이는 금리인상, 좌절한 '영끌'들의 목까지 죄는 금리인상 아닌, 창의적 복합적 인플레 처방을 이창용 후보자에게 기대한다. 그 화려한 스펙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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