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바다 옆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다양성 속의 비전'

입력
2022.04.06 04:30
19면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2022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지난달 27일 K'ARTS 신포니에타와 세계적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가 공연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2022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지난달 27일 K'ARTS 신포니에타와 세계적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가 공연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눈은 감고 뜰 수 있지만 귀는 늘 열려 있다.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는 무언가 듣게 되고, 듣고 싶은 소리를 가려 듣기 위해 귀는 더 민감해져야 한다. 눈으로 본 것은 형태나 색으로 직접적 묘사가 가능하지만, 들은 것은 구체적 표현이 어렵다. 미술 작품은 소유할 수 있고 가격으로 가치가 평가되기도 하지만 음악은 다르다. 음반이나 공연 티켓 정도는 살 수 있지만, 동시대 순수음악은 동시대 순수미술만큼 환영받지 못한다. 평소 자극적인 소리에 노출돼 있기 때문인지, 음악만큼은 자극적이지 않은, 듣기 편하고 익숙한 것을 선호한다.

해마다 벚꽃 피는 3월이 되면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린다. 20세기 서양음악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 통영에서 2002년 시작한 이 축제는 20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음악제로 자리하게 됐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다녀갔고, 수많은 작품이 초연되었으며, 신선한 기획과 음악당의 뛰어난 음향으로 이곳만의 확고한 정체성을 잘 쌓아 왔기 때문이다. 통영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음식, 예술가들을 배출해 온 도시의 품격은 덤이다.

올해부터 작곡가 진은숙이 5년간 이 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게 됐다. 2004년 ‘작곡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 상을 수상한 진은숙은, 2005년 이 축제의 상주음악가이기도 했다. 현재 가장 바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그녀의 두 번째 바이올린협주곡은 올해 초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 안드라스 넬손스 지휘의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에 의해 각 도시에서 초연됐다. 세계음악계에서 최고의 위상을 갖는 인물인 만큼 진은숙의 합류는 이 축제의 중요한 기점이 됐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통영국제음악제의 진은숙(가운데) 예술감독이 지난달 25일 음악제 주제인 '다양성 속의 비전'(Vision in Diversity)에 대해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올해 20주년을 맞은 통영국제음악제의 진은숙(가운데) 예술감독이 지난달 25일 음악제 주제인 '다양성 속의 비전'(Vision in Diversity)에 대해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3월 25일부터 열흘간 열린 올해 축제의 주제는 ‘다양성 속의 비전’이었다. 바로크부터 고전, 낭만, 21세기 현재에 이르는 프로그램으로 상주음악가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를 비롯해 연광철, 박혜상, 최희연, 막달레나 코제나, 크리스토퍼 포펜 등 다양한 국적의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멋진 무대를 만들었다. 2017년 그라베마이어 상을 수상한 미국 작곡가 앤드루 노먼을 상주작곡가로 세워 여러 작품을 선보였고, 현재시제의 국악을 동시대 음악으로 끌어안아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초연 무대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축제지만 진은숙은 통영음악제를 ‘현대음악제’로, 자신을 ‘현대음악 작곡가’로 불리는 표현에 거리를 두었다. 바흐와 모차르트가 그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동시대 작곡가들은 ‘새로운 음악’을 쓰고 있는 것이지, 시대나 특징으로 구분한 ‘현대음악’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5년간 축제를 관통하는 화두는 ‘다양성’이 될 텐데, 명사로 굳어진 단어는 특정음악에 대한 선입견과 불편함, 감상의 경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3일 폐막한 '2022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소프라노 박혜상이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3일 폐막한 '2022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소프라노 박혜상이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낯설음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의지를 갖고 통영까지 5시간이나 이동해 왔지만 여전히 동시대 순수음악은 익숙하지 않으며, 음악어법을 이해하는 소수를 위한 음악처럼 들릴 수 있다. 클래식 음악, 나아가 동시대 순수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하이테크놀로지 집적도가 높은 글로벌 기업은 다양성이 큰 도시에 위치해 있다. 이 도시들은 성, 인종, 장애, 국적에 대한 차별이 적고,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 높아 단위면적당 게이 분포를 나타내는 ‘게이 지수’가 높은 것도 특징이다. 다양성이 갖고 있는 불편함, 위험부담을 끌어안은 도시의 포용력은 인재를 끌어모았고, 기존의 벽을 허무는 혁신적인 산업에 도전하는 동안 도시는 발전하고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클래식 음악, 그중에서도 동시대 순수음악은 수많은 들을거리 중 소수에 해당할 것이다. 다양성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를 포용하면서 커진다. 지난 20년, 통영이라는 작은 도시가 품어낸 소수의 음악은 이제 힘이 생겼다. 축제를 믿고 따르는 '충성 관객'이 늘어났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현대음악제로서 점점 더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이 도시에서 세계 초연되고 있다. 그리고 통영을 찾을 때마다 ‘어떻게 들어야 할까’ ‘왜 들어야 할까’ 던졌던 질문은 낯설었던 음악을 즐기게 되면서 답을 얻었다. 다양성을 포용한 음악도시가 많은 것을 키워 내고 있다.


객원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