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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 vs 종로구 '천막 농성장 철거' 갈등

입력
2022.04.0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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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단체, 조정안 반대 SK본사 앞 천막 농성
구청 "보행 지장 줘선 안 돼" 거듭 강제철거 경고
단체 "집회 신고 마쳤다… 철거 땐 재설치" 반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본사 앞 농성장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본사 앞 농성장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가 피해 구제 조정안에 반대하며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천막을 철거하겠다는 구청과 이에 반발하는 단체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종로구는 도로 통행에 불편을 주는 행위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피해자 단체는 이미 신고된 집회인 데다 피해 환자들의 안전이 우려된다며 강제 조치에 반대하고 있다.

4일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단체 연합체 '빅팀스(victims)'에 따르면 종로구청은 지난 1일 단체가 농성장으로 쓰고 있는 천막에 계고장을 붙이고 '3일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하겠다'고 예고했다. 앞서 빅팀스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제시한 최종 조정안에 반대하며 지난달 26일부터 SK 본사 앞 보도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진행 중이다. SK그룹엔 이번 조정에 참여한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 2곳(SK케미칼, SK이노베이션)이 계열사로 있다.

종로구는 이날 강제 철거를 강행하진 않았다. 대신 오전 9시 30분쯤 농성장을 찾아와 "6일까지 천막 등 집회 물품을 치워달라"며 재차 계고장을 붙였다. '노상적치물 강제정비 예고통지서'라는 제목의 계고장엔 '노상적치물로 가로 환경을 저해하고 시민들의 안전한 보행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적혔다. 종로구의 계고 조치는 이번이 세 번째다. 구청은 지난달 29일에도 "31일까지 천막을 철거해달라"며 계고장을 발부했다.

4일 오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단식 농성 중인 서울 종로구 SK 본사 앞 천막에 종로구청이 천막 철거를 예고하는 계고장이 붙어 있다. 뉴스1

4일 오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단식 농성 중인 서울 종로구 SK 본사 앞 천막에 종로구청이 천막 철거를 예고하는 계고장이 붙어 있다. 뉴스1

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집회 신고 절차를 밟아 농성하고 있는데 구청이 계고장 부착은 물론이고 하루에도 수차례씩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순미(54) 빅팀스 위원장은 "피해자들에게 올바른 배보상과 사과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길에서 농성하고 있는데 구청이 (강제)철거를 예고하며 우리를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농성 참가자들은 철거반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지난밤 뜬눈으로 새웠다고도 호소했다.

단체는 조순미 위원장과 서영철(64)씨 등 피해 당사자들이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농성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빅팀스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누워 있는데 (구청에서) 강제 철거를 운운한 건 인권침해에 가까운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구청이 SK의 편을 들고 있다는 의심도 제기했다. 채경선 사무국장은 "지난달 23일 무기한 집회를 신고했는데도 구청에서 SK 민원을 받고 철거를 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천막이) 강제로 철거되면 우리는 재설치를 해서라도 농성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청의 천막 철거 방침을 두고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예컨대 종로구 관할 구역인 평화의 소녀상 인근 보도에 청년단체 반일행동이 2년 가까이 천막을 설치해놓고 연좌농성을 진행하고 있지만 별다른 계고 조치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종로구는 천막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집회를 막으려는 게 아니라 통행을 방해할 수 있는 도로 지장물은 설치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라며 "다만 최대한 (천막을) 자진 철거하도록 설득해 보고 나서 강제 철거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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