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속에 나타난 등대

입력
2022.04.04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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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밀려왔던 해무가 서서히 거치면서 숲과 함께 나타난 등대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밀려왔던 해무가 서서히 거치면서 숲과 함께 나타난 등대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메마른 가뭄에 단비'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지난주 찾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해수욕장에서 만난 봄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계절로는 완연한 봄이지만 여전히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날씨인 데다 비까지 내려서인지 제법 넓은 백사장에 사람의 인기척을 찾을 수 없는 한적한 풍경이 펼쳐졌다. 가끔씩 밀려오는 파도 소리만 정적을 깼을 뿐...

묘한 분위기에 취한 채, 비에 젖어 단단해진 백사장을 걷던 중 갑자기 바다에서 소리 없이 밀려온 해무가 내 앞의 풍경을 모두 지워 버렸다. 한참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바다를 향해 멍하니 서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는 순간 해무가 서서히 걷히면서 원래의 풍경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숲과 함께 나타난 등대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모두가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봄이면 바다 일을 하는 어부들에게는 갑자기 나타나는 해무가 큰 위협이 된다. 언제 어디서 밀려올 줄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이럴수록 우리에게는 등대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때마침 등대를 지나 바다로 나가는 배들이 눈에 띄었다. 등대의 존재감을 다시 일깨워 준 소중한 풍광이었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해수욕장에서 마주친 아름다운 풍경. 붉은색 암벽과 푸른 해송들이 봄비에 젖어 운치를 더해 준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해수욕장에서 마주친 아름다운 풍경. 붉은색 암벽과 푸른 해송들이 봄비에 젖어 운치를 더해 준다.


왕태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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