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들렀을 때 인상 깊었던 곳 중 하나가 광활한 황룡사지였다. 황룡사는 신라시대의 대표적 절이었으나 고려 때 몽골의 침공으로 소실됐다. 달빛이 쏟아지는 드넓은 초지를 바라보며 사라지기 전 웅장한 황룡사의 모습을 그려 보았으나 쉽지 않았다.
하지만 메타버스 시대를 맞아 이런 상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새롭게 주목받는 '메타버스 타임머신' 덕분이다. 메타버스 타임머신이란 가상 공간인 메타버스에 사라진 과거를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현대의 경주를 메타버스에 옮긴 뒤 온전한 황룡사를 만들어 넣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일고 있다. 이탈리아는 '메타 로마'라는 메타버스 타임머신 계획을 추진중이다. 현재의 로마를 메타버스로 옮긴 뒤 파손된 로마시대의 유적인 콜로세움과 로마 황제들이 거닐던 포로 로마노 등을 온전하게 복원해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로마는 관광 및 교육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탈리아는 메타 로마를 위해 우리나라에 적극 손을 내밀고 있다. 이탈리아의 신기술, 에너지 및 지속가능한 경제발전기구(ENEA)는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 '메타렉스'를 개발한 오썸피아와 메타 로마를 진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를 위해 다음 달 중 유로펀드의 투자가 결정되면 오썸피아는 메타 로마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오썸피아는 실시간 촬영한 실물 영상에 컴퓨터로 만든 가상 구조물이나 아바타를 결합해 메타버스를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도 마찬가지다. 메타 로마처럼 메타버스로 구현한 바르셀로나에 역사적 유물을 온전하게 재현하는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일종의 '메타 바르셀로나'인 이 프로젝트가 추진되면 스페인의 대표적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해 100년이 넘도록 짓고 있으나 아직 완공되지 않은 바르셀로나의 명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온전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재청이 지난해 메타버스 타임머신 서비스를 구축하는 '문화재 디지털 대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조선시대 한양의 모습이나 경주 황룡사지를 메타버스로 되살리는 계획이다.
이처럼 현재와 과거가 혼재하는 메타버스 타임머신은 훌륭한 관광 및 교육 자원이 될 수 있다. 실제 여행에서는 볼 수 없는 온전한 모습의 역사적 유적들을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관광인 랜선 투어나 온라인 수학 여행으로 만날 수 있다. 특히 현재 도시에서 로마시대나 삼국시대의 모습을 만나는 이색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지방자치단체들이 메타버스 타임머신에 적극 관심을 갖고 오썸피아 등과 접촉중이다. 지자체들은 문화 유적들을 메타버스에 그대로 재현해 코로나19 시대의 온라인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재미있는 것은 타임머신처럼 공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것도 메타버스에서 가능하다. 현재의 서울을 구현한 메타버스에서 광화문 거리만 1960년대로 거슬로 올라가 살펴보거나 화재 이전의 숭례문 모습을 구경하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메타버스에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건물, 생산품 등 기업들의 흔적 또한 타임머신 기능을 통해 메타버스에서 홍보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타임머신은 메타버스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메타버스를 놀이와 투자의 대상에서 관광과 교육의 수단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는 실제 여행과 온라인 가상 여행이 합쳐지면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메타버스 라이프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