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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종전되든 러는 우크라이나 완전히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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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의외의 연속이다. 러시아의 고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라는 영웅의 탄생, 자유주의 국가와 시민들의 열띤 지지가 전례 없다. 세계는 신냉전 질서로 재편될 것이고 한국에 갖는 함의는 더욱 남다르다. 29일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을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의미와 변화를 짚었다. 그는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우크라이나는 친서방으로 완전히 돌아서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강화되며 자유주의 국가 연대가 공고해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설정했던 목표와는 정반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황부터 전망해 보자. 전쟁이 한 달 넘게 장기화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영토 포기와 중립국화를 논의할 수 있다”고 입장을 선회해 평화 협상 타결 가능성도 커졌는데.
“푸틴 대통령은 길어도 일주일 내에 키이우를 함락시키고 친러 정권을 세워 국제사회에 기정사실화하려 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생각보다 잘 싸워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됐다. 여전히 키이우 함락은 어렵다. 시내를 요새처럼 만들어 게릴라전을 벌이면 러시아 전력이 아무리 우위여도 도시를 다 부수지 않고서야 승리하기 어렵다. 푸틴은 이제 돈바스 지역에 집중해 루한스크·도네츠크 자치공화국의 합병 내지 독립 인정을 목표로 바꾼 게 아닌가 분석된다. 돈바스에서 확전하는 한편 협상을 진행해 전쟁을 끝내려는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가능성으로 돈바스를 연막 삼아 전면전을 이어갈 수도 있는데 그러면 소모적인 장기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생화학무기나 전술핵 동원까지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대량살상무기인 진공폭탄을 사용한 정황이 있는데 핵무기까지 나아가면 3차 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이 경우 미국도 개입한다는 방침을 시사했고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 타이거팀이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러시아로선 부담이 크다.”
-그렇다면 평화 협상으로 종전될 가능성이 높겠다. 양국이 뭘 주고받아야 하나.
“양쪽 다 출구전략 모색에는 공감하는 듯하다. 러시아가 원한 것은 4가지였다. 젤렌스키 정권 퇴진, 우크라이나 무장 해제, 돈바스 지역과 크름반도의 합병 내지 독립인정, 나토 가입 불가인데 젤렌스키 퇴진은 거둬들였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먼저 포기했고 이제 영토 문제와 중립국화를 논의할 수 있다고 내놓았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까다롭다. 또 중립국 선언을 하더라도 어떤 중립국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핀란드 스웨덴 스위스가 중립국인데 이번 전쟁에서 나토를 응원하는 여론이 보였다. 우크라이나가 중립국으로 남더라도 안전 보장을 위한 준동맹관계를 원할 것이다. 무장 해제는 절대 못 받을 문제다. ”
-여러모로 푸틴의 오판이 의외다. 전쟁이 이렇게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 못했는데 드러난 러시아군 전력이 너무 형편없다.
“푸틴은 원래 계산을 잘하고 심리전과 선전전에 능한 사람이다. 폭력을 쓰겠다는 위협만으로 22년을 집권할 수는 없다. 제한적 목적을 설정하고 제한적으로 군사력을 쓴다. 2008년 조지아 군사개입이 그 예다. 조지아 북동쪽 친러 성향의 남오세티아가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소요가 발생했을 때 조지아 정부군이 출동하자 러시아가 개입해 속전속결로 끝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탄핵된 후 크름반도가 동요하며 독립을 요구했을 때도 나토가 나설 틈 없이 군사작전을 끝내버렸다. 이번엔 너무 이상하다. 푸틴답지 않은 오판을 했다. 전문가들은 루한스크·도네츠크 독립인정 내지 합병을 목적으로 한 제한적 군사작전을 예상했는데 전면전을 벌였다. 친러 지역에서 환영할 것이란 예상도 틀렸다. 우크라이나군 전력도 과소평가했다. 푸틴이 코로나로 오래 격리돼 현실감각이 떨어졌다, 20년 독재를 하니 측근의 조언마저 소리만 지르고 무시한다 등 다양한 해석이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정신분석을 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의 선전 또한 놀랍다. 키이우 외곽 일부는 탈환했고 러시아 전차를 노획해 전차 수가 더 늘었다.
“우크라이나군이 2014년 크름반도 합병 때의 오합지졸이 아니다. 당시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킨 상태였다. 징집제를 포기하고 신무기 도입 계획을 폐기하고 정신훈련도 안 했다. 한마디로 전투 능력이 없었다. 이후 우크라이나가 절치부심했고 나토와 미국도 안 되겠다 싶어 폴란드 접경 지역인 르비우에 훈련센터를 만들어 지원했다. 이라크전 등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 훈련을 시켰다. 그렇게 훈련받은 군인들이 지금 전국 방방곡곡에서 러시아군에 맞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미국이 지원한 무기도 큰 도움이다. 대전차 미사일, 스팅어 대공미사일 등은 화력 범위 정확도 등이 엄청 좋아 탱크부대는 거의 무력할 정도이고 전투기 격추도 아프가니스탄전 때보다 파괴적이다. 또 미국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 제재를 하고 있다. 러시아 은행의 스위프트 퇴출은 경제적 핵무기로 불린다. 러시아가 독자 결제시스템을 구축했다고는 하나 세계무역결제의 4~5%에 불과하다. 푸틴이 핵무기 사용을 언급한 것도 그래서다.”
-결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푸틴은 러시아 세력권을 보존·확장한다는 목표와 정반대로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우크라이나가 주권을 지키고 러시아가 돈바스를 얻는 무승부로 끝나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는 친서방, 반러 국가로 돌아설 것이다. 나토에 가입 안 해도 준동맹관계를 요구할 것이고 서방 세계는 조심스럽게 제공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200만 명이나 나라를 탈출하고 대도시가 초토화돼 전쟁 복구가 당면한 문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이전까지 친러 성향이었던 드네프르강 동쪽 지역까지 반러 민족주의로 똘똘 뭉치게 됐다. 오렌지혁명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겠다는 국민적 열망은 더 커지고 친유럽 성향이 강해질 것이다. 푸틴의 전쟁 목적과는 반대의 결과다.
이 전쟁은 러시아 아닌 푸틴의 전쟁이다. 그래도 강대국이고, 내가 읽고 들으며 자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차이콥스키 같은 소프트파워가 있는 나라인데 이제 국제사회의 왕따, 불량국가가 돼 버렸다. 21세기에 이런 공포정치, 독재가 가능하다는 게 놀랍다. 경제도 피폐해졌다. 다만 푸틴 독재가 종식되려면 5년, 10년쯤 더 걸릴 것 같다. 푸틴에 대항할 중산층이 대거 러시아를 떠났고 가속화하고 있어 대중적 저항이 어려워 보인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민족주의가 강화하며 신나치주의가 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본다. 우크라이나에 스보보다라는 극우 정당이 있으나 2019년 총선에서 1석을 얻었을 뿐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홀로코스트에 친족을 잃은 유대계라는 건 전 국민이 다 아는데 대선에서 73% 지지를 받은 걸 보면 신나치가 확장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돈바스 내전 때 친러주의자를 잔혹하게 학살한 아조우연대가 백인우월주의 사상을 갖고 있고 문양도 나치 문양과 비슷해서 신나치로 지목됐으나 우크라이나 정규군에 편입된 이후로는 이런 성향이 희석됐다. 신나치에 반감이 가장 심한 이스라엘 언론조차 아조우연대의 신나치주의는 폐기됐다고 평가한다. 침공 직전 러시아가 ‘러시아인 인종청소’를 주장한 것은 프로파간다의 일환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나토가 강화되면서 유럽에서 독일의 군비증강을 예민하게 보는 시선도 있을 듯하다.
“나토를 조금이라도 서쪽으로 퇴각시키고 분열을 조장하려는 것 또한 푸틴의 목적 중 하나였는데 이 역시 반대 결과를 낳게 됐다. 사실 나토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뇌사 상태’라 했을 정도로 역할에 회의가 컸다. 미국과 갈등도 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국방비를 더 내라고 특히 독일을 몰아세웠다. 독일은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이하로 제한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확고한 나라다. 그런데 지금 독일이 국방예산을 2%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했고 미국 전투기도 구입하기로 했다. 트럼프도 하지 못한 걸 푸틴이 해냈다. 독일의 재무장은 유럽에 민감한 문제지만 일단 나토 제도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공통된 목표가 없어 흔들리던 나토가 새 생명을 얻었다. 유럽연합(EU)도 브렉시트 등으로 힘들었는데 더 많은 국가가 가입하겠다고 하고 10년째 계류 중이던 크로아티아 가입도 빨리 승인하자는 말이 나온다.”
-결국 세계가 신냉전 체제로 재편되는 것인가.
“베이징올림픽 때 푸틴이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을 장시간 회담한 후 공동선언문이 재미있는데 외부세력(미국)의 내정간섭과 색깔혁명(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 조지아 장미혁명 등 자유민주주의 시위)에 반대하고 중국의 정치경제모델을 치켜세우는 내용이다. 독재자들이 시민 저항으로 체제가 붕괴되고 권좌에서 물러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뜻이 보인다. 세계에 공산주의를 전파하겠다는 거창한 목적은 없지만 독재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푸틴이 이번 전쟁을 쉽게 이겼다면 독재국가 연대는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됐을 것이다. 중국도 대만을 손쉽게 얻으려 하고 북한도 과감한 도발을 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자유주의국가 연대가 강화됐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이 정말 강하다는 사실도 보게 됐다. 한때 체제 경쟁이 끝나 ‘역사의 종언’을 말했었는데 역사는 끝난 게 아니라 잠시 휴가를 갔던 것뿐이다.”
-전쟁을 피할 길이 있었을까. 근본적으로 나토 확장이 문제인데, 유로마이단 시위 이후 강렬해진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유민주주의 열망을 EU·나토 가입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젤렌스키가 무시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나토 확장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본다. 존 미어샤이머(시카고대 석좌교수) 같은 미국 내 현실주의자들은 미국의 나토 확장을 바보 같은 정책이라고 한다. 어떤 강대국이든 세력권을 원한다. 미국처럼 대양과 캐나다·멕시코로 둘러싸인 천혜의 조건을 가진 나라도 먼로 독트린, 루스벨트 추론을 선언하며 군사력으로 세력권을 유지하려 하는데 러시아는 14개국과 접경한 나라다. 우크라이나와 사이에 산맥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평원이라 안보 우려가 더 크다. 구 소련 해체 당시 클린턴 미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에게 나토 확장 않겠다고 약속해놓고 5차례나 확장했다. 발트3국, 동유럽이 가입했고, 조지아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가입한다니 러시아로선 참을 수 없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경제력 인권 부패지수 등 EU 가입 기준이나 나토 가입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데 젤렌스키가 가입을 주장해 전쟁 유발까진 아니어도 러시아를 자극한 건 사실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왜 이들이 나토에 가입하고자 했겠나. 러시아가 (조지아 침공 등 강압적으로) 완충지대를 만들려 하니 당하는 국가는 너무 싫은 것이다. 러시아는 전쟁을 하지 않고 세력권을 보존할 수도 있다. 크름반도 합병 전만 해도 우크라이나 정계에 친러파가 다수당을 차지했고 여론도 팽팽했다. 내가 푸틴이라면 친러 정치인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정치적으로 장악했을 것이다. 크름 합병이 전술적·민족적 쾌거일지 몰라도 정치적으론 반러의 시작이 됐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우리는 어떻게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 위협과 자유민주주의라는 딜레마에 대한 해법이 뭔가.
“핀란드화라고 할 수 있지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1930년대 말 구 소련이 핀란드를 합병하려 할 때 핀란드는 철저히 중립으로 남겠다고 러시아와 딜을 했다. 정치체제를 건드리지 않으면 외교정책에선 친소 노선을 걷겠다는, 자주권을 보장받고 외교 권한만 위탁하는 선택이었다. 핀란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공고했고 러시아계가 2~3%에 불과해 민족적 정체성이 확실했다. 양국 간 무승부로 끝난 겨울전쟁은 핀란드가 함부로 볼 상대가 아니라는 인상을 남겼다. 이런 조건이 핀란드화를 가능케 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정치체제가 취약하고 국민의 3분의 1이 러시아계라서 핀란드화를 택하면 결국 러시아화할 것이란 우려가 컸다. 러시아는 거꾸로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유주의 열망이 커진다는 게 위협이었다. 전쟁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강력한 미국의 억지력뿐일 텐데 미국이 실패했다. 그러니 젤렌스키가 나토 가입으로 안보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강대국 사이 완충국 처지여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함의가 크다. 한국이 얻어야 할 교훈은.
“우선 동맹이 중요하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동맹이 없었기에 푸틴이 침공을 감행했다.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하면 러·영·미가 안전을 보장한다는 1994년 부다페스트 조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동맹관계를 통해 북한과 독재국가 연대의 공세를 억제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이 미국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했는데 문제는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핵공격을 감행할 때 미국이 서울을 구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희생을 감수할 것이냐는 점이다. 미국에도 내부지향적 분위기가 있어 우크라이나에 개입 못했는데 한반도 확장억지는 믿을 만한가. 믿을 만해야 북핵을 억지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안보전략에서 핵의 역할이 축소되는 경향이 있었다. 바이든 정부는 핵태세검토보고서에 유일목적(sole purpose·핵공격이나 그 위협이 있는 경우에 한해 핵무기를 사용한다) 원칙을 표명하려다 폐기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는 등 좀 더 공세적으로 바뀌고 있다. (31일 미 의회에 제출된 핵태세검토보고서에는 유일목적 원칙이 빠지고 극단적 환경에서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표현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자주국방 또한 중요하다. 북한이 전술핵을 만드는데 우리도 압도적 대응(KMPR),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등으로 방어해야 한다. 킬 체인을 강화해 선제타격 능력도 키워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이 선제타격을 언급한 것이 안보불안을 조장한다는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필요한 것이고 합법적인 것이다. 나아가 북한이 극초음미사일 같은 방어 안 되는 신무기, 오롯이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탄도미사일 등을 엄청 개발하고 있어 우리로선 자체 핵무장 얘기가 안 나올 수 없다. 남북 간 무기경쟁이 가속화한다는 우려가 있지만 이미 시작됐으면 이겨야 하지 않나. 우리나라가 굳이 핵무장을 안 한다고 할 필요는 없다. 확장억지 프레임 안에서 핵공유도 할 수 있다고 본다. 나토식 핵공유는 일본도 들어와야 해서 복잡하지만 일단 어떤 조건에서 핵을 사용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북한 또한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핵을 절대 놓지 않겠다고 생각할 텐데 군비경쟁과 긴장 고조의 악순환 아닌가.
“한·미의 억지력 확보가 북한에 공격적으로 보여 북한이 도발 수위를 더 높이는 악순환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북핵에 대한 우리의 자체 대응능력은 상당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남북 화해 노력을 중단하자는 게 아니라 방어력과 억지력을 구비하면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핵을 포기한 리비아, 이라크에 이어 우크라이나를 보고 핵을 안 놓을 마음을 굳혔을 가능성이 높다. 국제 정세상 몇 년 전만 해도 미·중 패권 경쟁과 신냉전 진영화가 이렇게 가열되지 않아 북한이 비핵화를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편먹기가 절대적으로 중요해졌다. 중국 입장에선 미국을 상대할 때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 게 낫다고 여길 수 있다. 북한은 중·러를 뒷배 삼아 도발하기 쉬워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크라이나에서 단박에 러시아가 승리하지 않아 중국이 애매해졌고 자유주의 연대는 똘똘 뭉쳤다는 점이다.”
-균형 외교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한가.
“정부가 최상위 원칙을 확실히 세웠으면 한다. 중국이 급부상하고 신냉전이 확산하는 이때에 외교안보 정책을 미·중 간 선택의 문제로 치환해 안미경중 같은 슬로건으로 귀결시키면 안 된다. 안보와 경제 다 중요하지만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보존하고 강화하는 게 최우선 원칙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그런 질서에서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으며 이 질서가 보존되어야 미래가 있다. 중국이 한국 경제에 크게 기여한 게 사실이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교란하고 내부적으로 인권을 탄압하면서 부상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 우리나라가 전쟁 발발 직후 대러 제재 참여에 주저했던 것도 이런 최우선 원칙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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